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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고등학교에모두진학시켰다.
박만곤 부부는 현재 원산도 감리교회에 다니고 있다. 신도는 대부분 노인들로 20여
명이다.그러나김명희가처녀때는원산도의많은젊은이들이교회에다녔다.
옛날에는 대천에 반공포로들의 모임도 있어 한 번 가 본 적이 있었다. 중학교 교사로
있는사람이책임자였는데,갈만한데가못된다고생각하여다시는가지않았다.
박만곤은 서산 AB지구 간척사업 이후 주벅도 안 되고, 김발도 안 되어 한때 서울에
올라가 오토바이 부품공장에 취직했었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가자마자 아프기 시작하
여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다. 결국 1달도 못 되어 다시 원산도로 내려왔고, 몸도 나았다.
교인들이내려오게해달라고기도했다고한다.
김양식을 하고, 생활용수로 쓰기 위에서 밭에다 샘을 팠다. 30자를 팠는데 물이 잘
나왔다. 샘 속에는 큰 독을 묻고, 파이프를 세운 뒤, 주변을 돌로 채우고 흙을 덮어 샘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전기가 들어올 때라 모터로 끌어 올리는 샘이었다. 샘을 파는 것은
그가 직접 하였고, 흙을 올리는 일은 아이들이 하였다. 돌을 채우고, 흙을 덮기 전에 올
라오다가 떨어져 큰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한때 이 샘물을 잘 사용했으나, 마을에서 옆
에지하수를개발하여말라버렸다.
원산도 선촌마을의 조개는 공동양식장에서 캔다. 어촌계에서 상인과 협의하여 작업
하는데,1가구에1사람씩작업할수있고,1인당40㎏을캔다.주로여자들이나가서작
업하고 남자들은 운반해 주는 정도이다. 김명희는 젊었을 때는 40㎏을 충분히 캤는데,
현재는 어렵다고 한다. 40㎏ 한도에서 캔만큼 돈을 받는다. 흉년에 생활이 어려울 때는
쑥을 뜯어 먹고, 바다에서 말을 뜯어다 밥에 넣어 먹었다. 특히 염전 가에 나는 생이라
는것을뽑아먹었는데달착지근하였다.
원산도에는 학생들이 없어 학교가 폐교되고 있다. 제일 먼저 원산초등학교가 폐교되
었고, 이어 원의중학교가 폐교되었다. 원의중학교를 폐교시키지 않으려고 어른들까지
입학하였으나결국폐교되고말았다.
222 보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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