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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논산의교육발전
힘들어도놓을수없었던공부
어려운 상황에 놓였으나 그는 공부를 계속했다. 공주에 거주하면서도 청양 목면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목면 심상 학교를 거쳐 전주사범학교 특설 강습과에 진학했다. 사범학교에
진학하려면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자격이 필요했기에 따로 입학 자격시험을 봐야 했다.
혼자 교과서로 자습을 해 자격시험을 통과했다. 사범학교에 다니면서는 매달 관급을 받았
다. 지금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한 달에 30만 원 정도인데 가족과 떨어져 있어 생활비로 쓰
면서공부를계속할수있었다.
초임발령을받은공주탄천국민학교
1944년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첫 발령을 받았다. 공주에 있는 탄천국민학교였는데 그때
그의 나이 19살이었다. 국민학교였지만, 막상 학교에 가 보니 나이가 동갑인 학생도 있었
다. 1944년은 일제 강점기였고 일본이 대동아 전쟁(大東亞戰爭)에 모든 것을 동원할 때여서
물자도 부족했고 사람도 부족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중요했는데 일정한 나이가 된
사람들을 무작위로 전쟁에 끌고 가서 자격 있는 교사를 찾기도 힘든 현실이었다. 그래서 당
시에는속성으로교육해서교사를충원하는제도도있었다.
교사뿐만 아니라 교육에 필요한 환경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그가 초임 발령을 받았던
당시만 해도 작은 면은 2개를 묶어 학교 하나를 두었다.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실도
없어서 동네의 공회당을 이용했다. 그래도 당시에는 능력 있는 사람들을 교사로 많이 충원
하기위해공무원중에서는교사의대우가좋은편이었다.
구자곡국민학교에서시작한논산초등교육
2년을 탄천국민학교에서 근무하고 다음으로 발령받은 곳이 구자곡국민학교였다. 구자
곡국민학교는 나라에서 공립학교로 만든 곳이라 다른 학교와 비교하면 환경이 좀 나은 편
이어서 교실은 갖춰져 있었다. 그래도 학생이 워낙 많아 여유 공간이 없었다. 한 학급에 학
생들이 80~90명으로, 탄천국민학교가 40~50명이던 것과 비교하면 콩나물시루 같았다.
선생님이부족해교사1인이2개학년을맡아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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