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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의 서원 역사와 서원 복원의 필요성
부수적으로 하는 일이었으나 필법이 매우 예스럽고 고상[高古]하였다.
당시에 위진풍(魏晉風)이 있다는 일컬음이 있었다.
내가 젊어서선생께서 쓰신‘아침에는북해에서 놀고저녁에는 창오에
서 논다[朝遊北海暮蒼梧]’
는 절구(絶句) 한 수의 대자 초서(大字草書)를
28)
보았는데, 웅위(雄偉)하고 기굴(奇?)하여 왕희지의 필력이 있었다. 백하
(白下) 윤순(尹淳: 1680~1741)이 일찍이 이 서첩을 보고 흠모한 끝에 그
필법을 모방하려 하였으나, 붓을 쥐고 한참 동안 있다가 망연자실하며
포기했다고 한다.
선생은 원악지(遠惡地)에 유배되어 고생하느라 수명이 길지 못했다.
따라서 세상에 전하는 글씨가 매우 적다. 김공 사척(金公思?)이 충청도
연산(連山)의 수령으로 나갔을 때 도적 한 명을 잡아 그의 보따리를
열어 보았더니 한 서첩이 있었다. 바로 자암의 글씨였다. 그의 시 30여
편을 쓴 것인데, 글씨의 필획이 힘차고 시구의 운치가 소산(蕭散)하였다.
옛사람의 필법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마치 왕희지의 난정첩(蘭亭帖)처럼
산음 수죽(山陰脩竹)이 껍질을 벗고 땅속에서 나와 우뚝 솟아나서 구름
을 뚫을 듯한 기세가 있었다. 이 서첩은 난리통에 없어지지 않고 도적에
게도 훼손되지 않았다. 아마도 귀신이 보이지 않게 도왔기 때문이리
라.
29)
위의글에서는김구의서법에대한특징을대개①위진풍의예술성,
②고고(高古)한 탈속성, ③웅위기굴(雄偉奇?)로 표현되는 웅장함과
28) 중국 당나라 때의 道士 呂洞賓의 시 ‘洞庭湖’ 가운데 한 구절이다.
29) ?耳溪集? 권16, 45b-46a, ?題金自菴絿筆蹟? “自菴金先生道學節行, 爲己卯士
類所尊, 與靜?諸賢, 同其進退. 至若文章翰墨, 乃其餘事. 而筆法尤高古, 當時
稱有魏晉之風. 良浩少也, 得見公所書朝遊北海暮蒼梧一絶大草, 雄偉奇?, 有
大令筆力. 尹白下嘗見而慕之, 欲倣其法, 把筆良久, 憮然而罷云. 然先生流竄
嶺海, 年壽不永, 故書跡傳于世甚少. 近歲金君思?, 宰連山, 獲一盜. ?其?,
有一書帖, 卽自菴書也. 寫其詩三十餘篇, 隨手漫筆. 不甚致意, 而鋒穎?勁, 韻
致蕭散. 可見其心?, 而第不??於古人之法. 譬如山陰脩竹解苞出土, 挺然有
干雲之勢, 而柯葉猶未??, 亦足以冠百卉矣. 今於兩賢跋文, 見其一顯一晦若
有數也. 始則不滅於兵?, 而得諸?食之婦, 今又不毁於盜賊, 而入於金君之手,
殆鬼神之默護。而非人之所能爲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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