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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한 외규장각에 전시된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
걸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부정적 이미지만을 남긴 것은 또 아니다. 수렴
청정을 하는 동안, 그는 여성다운 섬세함으로 복지정책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행적을 정리한
「정순왕후 지문」
에서는 서민들을 위해 구휼정책을 손질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그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남긴 인물이었다.
그런 정순왕후가 이번에 프랑스에서‘귀환’
한다. 영조와 정순왕후의 혼인과정을 담은 왕실문서
인 가례도감 의궤가 145년 만에 프랑스에서 돌아오는 것이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강화유수부(고려궁터) 건물을 불태우면서 그곳의 외규장각 도서들을 약탈할 때, 이 의궤가 프랑스
인들의 손에 넘어갔던 것이다. 규장각(왕립 학술원)의 분소인 외규장각에는 병인양요 직전까지만
해도 5,067권의 서적이 있었다. 이 중에서 프랑스군은 고문서와 의궤(행사 가이드)를 집중적으로
약탈해갔다. 이렇게 프랑스로 넘어간 서적 중에서 297권이 지난 4월 14일부터 5월 말까지
4차례에 걸쳐‘대여’형식으로 돌아온다.
‘반환’
이 아니고‘대여’
인 이유는, 프랑스 측이 자신들의
소유가 불법임을 인정하기 않기 때문이다. 정순왕후의 가례도감 의궤가 4월 14일에 돌아왔는지
아니면 그 후에 돌아오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반환되는 도서의 목록은 맨 나중에 일괄적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도서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을 고려해서, 프랑스 정부가
가급적 조용히 도서를 반출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대여’
냐‘반환’
이냐의 법리 논쟁이 아니다. 정순왕후 가례도감
의궤를 포함한 조선 서적에 대해 프랑스군이 왜 그토록 집착했는가 하는 점이다. 마치‘건물 철거
반’
처럼 강화유수부 건물을 처참히 파괴한 프랑스군이 외규장각 도서만큼은 왜 그토록 소중히 챙
겼는가 하는 점이다. 19세기에는 서양에 비해 동양이 미개하지 않았는가? 미개한 나라의 서적
같은 것은 싹 불태웠어야 하지 않는가?
오늘날 세계를 리드하는 것은 미국과 서유럽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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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osan.cult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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