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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 이치)와 기(氣, 기운)! 주자의 기본 구도는 간단하다. 하지만 이 간단한 사유의 틀로 주자는 우
주론으로부터 존재론으로, 인식론으로부터 윤리론 사이를 종횡무진 넘나든다. 리기론이란 간단히 말
해 세상 모든 현상[기(氣)] 이면에는 그 이치[리( )]가 존재한다는 사유이다. 예컨대 하늘에는 하늘의
이치가 사물에는 사물의 이치가, 사람에게는 사람의 이치가 각각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각각의
이치들은 또한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존재하게끔 되어 있는 또 다른 이치를 따르고 있다.
다시 말해 원래 리( )는 하나인데, 이 하나의 이치가 각기 다른 수많은 존재로 현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밤하늘에 달이 떠오르면, 천 개의 강과 호수마다 그 달이 비치지 않는 곳이 없다.
간혹 날이 흐려 달이 구름에 가려진다면 천 개의 달은 구름에 가려진 모습으로 드러난다. 즉 천 개의
달은 하늘의 달에 의해 그 존재 작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늘의 달과 천 개의 달 사이의
관계가 서로 종속적인 것이라고는 말 할 수 없다. 천 개의 달의 존재 이유가 되는 하늘의 달이라 할지
라도 그것은 결국 강과 호수라는 구체적 작용이 아니면 세상에 드러날 수가 없다. 요컨대 하늘의 달
또한 천 개의 달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세상에 나설 수가 없는 것이다. 하늘의 달과 강물 위에 뜬 천 개의
달을 같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하늘의 달과 강과 호수 위에 떠오른 천 개의 달은 어떤 관계인
것일까.
주자는 하나의 달이 천 개의 달로 떠오르는 것은 하나의 이치( )를 수많은 존재들이 나눠 갖고 있는
것[리일분수(
)]이라고 했다. 천 개의 달은 하나의 달을 천 개로 조각내 나눠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천 개의 달은 저마다 각각 하나의 달을 품고 있다. 다만 그 천 개의 강마다 서로 다른 기질적
차이 때문에 하나의 달은 천 개의 강으로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강의 달은 지형에
의해 일그러질테고, 어떤 강의 달은 조도(
)에 의해 더 하얗게 빛나거나 어둠 속에 잠길 것이고,
또 어떤 강의 달은 크거나 작게 현상할 것이다. 어느 것 하나 하늘의 달을 따르지 않을 수 없지만,
이 각각의 달들은 저마다의 조건[기질]에 따라 단 하나도 똑같은 달이 되지는 않는다.
주자는 말한다. 리와 기는 서로 섞이지 않으며[불상잡(
)], 서로 떨어지지도 않는다[불상리(
)]고. 하지만 모든 현상의 이면에는 반드시 그것을 가능케하는 이치가 있다는 주자의 생각은 사실상
기(氣)보다 리( )가 선차적인 것임을 선언한 것이었다. 물론 주자는 이것이 시간적인 순서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따진다면 리가 기에 선행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순간, 주자의 리기론은 천 수백년 간 이어온 기(氣)중심의 중국 철학 전통을 근본에서부터 뒤집는 혁명을
시작한다.
사실 리이니 기이니 하는 것을 따지는 건 문제의 본령이 아니다. 주자는 언제나 인간의 능력이 그러한
이치들을 반드시 알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주자는 말한다. ‘인간의 영명(
)함은 알지 못하는 게
없다. 다만 그 이치에서 아직 다 궁리하지 못했을 뿐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바탕 위에서 하나씩 하나
씩 배움을 통해 앎의 영역을 넓혀간다면, 어느 순간 세상의 이치를 모두 궤뚫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앎의 의지를 통한 인간의 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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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osan.cult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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