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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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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했는데, 소위 투석식이었다. 마을 공동으로 한 사업은 아니었고 한상인 씨가 주도해서
4~5가구가 따로 구역을 정해서 양식하였다. 이들은 빙도에서 돌을 가져오기 위해 목선을
구입해서사용하였다.
굴의품질이좋아인기였고,주민들을고용하여일을시켰다.한상은
씨는굴양식을해서
2)
돈을벌었다.
굴 양식장은 바다의 한 가운데에는 하지 않았다. 바다의 한 가운데는 안면도 등지에서
광천 독배로 드나드는 뱃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큰 배들은 빙도의 남쪽으로 다녔고, 작은
배들은물때를보아북쪽으로다녔다.
본궁마을에서는김양식도하였다
본궁마을에서는 김 양식도 하였다. 장소는 굴 양식을 하는 빙도 사이의 바다였다. 김 양
식은 마을 주민 대다수가 참여하여, 어촌계를 조직하고 구역을 나누어 하였다. 대략 5떼
~10떼를맸는데,포자는원산도나삽시도같은섬에서붙여왔다.본궁마을에는배가없었
기 때문에 오천에 사는 주민들에게 부탁하여 포자를 붙여 왔다. 좋은 포자를 붙이기 위해
장소를물색하였고,포자를붙여주는어촌계에비용을주었다.
처음에는 대나무를 엮어 양식했기 때문에 힘이 많이 들었으나 나중에는 그물로 양식하
여손쉽게하였다.
본궁마을앞은파도가없어안전하게양식할수있었고,생산된김도품질이좋았다.
김 양식을 해서 많은 소득을 올렸으나, 보령화력발전소가 들어오는 바람에 양식을 포기
하고 보상을 받았다. 본궁마을은 김 양식을 늦게 시작하여 약 10여 년 동안 김 양식을 하
였다.
김 양식은 본궁 마을보다 상류 지역인 신죽리에서도 했으나 규모는 작았다. 신죽리보다
더상류지역에서는김양식을할수없었다.
2)생존했으면2022년현재95세쯤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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