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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된 것은 1970년대 원산도 사람인 한옥윤씨가 명금해안에 말뚝을 세운 주벅을 매면
서부터이다. 이때 주벅에서 많은 고기가 잡히자 외연도 사람들도 관심을 가졌고, 새로운
기술인 낭장망을 설치하기 시작하여 많은 고기를 잡아 크게 번영하였다. 낭장망에는 3
월부터 시작해서 가을까지 고기가 들었는데 주로 멸치와 까나리를 잡았다. 최돈영의 경
우에는 낭장망 3개에서 생산된 멸치가 하루 3㎏짜리 100포대 정도였다. 낭장망은 하루
에 2번씩 고기를 건져야 했고, 건져 올린 고기는 삶아서 말려야 했다. 모든 과정을 다 해
야했기때문에여간힘든일이아니었지만,이제까지외연도에서벌어보지못한돈을벌
은것이다.
최돈영은 한때 당주를 하였다. 그때는 1년에 당제를 두 번, 노구제를 두 번 지냈다. 당
제는 음력 4월과 동짓달에 지냈고, 노구제는 조상에게 방안제사 지내는 것처럼 지내는
데 정월보름과 8월 보름에 지냈다. 당제는 소를 잡아서 지냈다. 정월보름에는 1년을 잘
보내게 해달라는 뜻에서 올리는 제사고, 동짓달에는 한 해 잘 살았습니다 하고 지내는
제사라고 한다. 4월 당제는 고기가 많이 잡힐 때라 지내는 제사라고 한다. 제를 마치면
안당에서 고기와 떡을 온 마을 주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당제 때 출산은 해막
에서 하였는데, 봉화산 서북쪽 기슭에 해막이 있었다. 해막은 방 한 칸, 부엌 한 칸으로
돌담에 함석을 얹은 가옥이었다. 당제 기간에 출산하는 임산부가 있으면, 일단 육지로
나가거나 주변에 있는 횡견도, 오도 등으로 피신을 했고, 그러지 못하면 해막으로 들어
가출산을하였다.
옛날에는 외연도 근해에서 전갱이와 고등어를 많이 잡았다. 두 배가 고기떼를 둘러쳐
잡는것이다.그물실은배가고기를둘러싸서잡은뒤운반선이와서사갔다.
외연도 본섬에는 맨손으로 갯것을 채취할 만한 곳이 별로 없기도 하고, 있어도 많은
사람들이 출입하기 때문에 잡을 것이 없다. 따라서 배가 있는 사람들은 주변에 있는 바
위섬에 들어가 갯것을 하였다. 이것을 외연도에서는 ‘운섬’이라고 하였다. 운섬 가면 사
람손이닿지않아많은갯것을할수있었다.
6·25전쟁 때 외연도에는 인민군이 들어오지 않았고 해군들도 상륙하지 않았다.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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