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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지향(志向)에 하나라도 부정(不正)한 것이 있으면, 군자는 구차스럽
게머물려하지않는것입니다.”
하였다.임금이이르기를,
“나도 상평창(常平倉)을 설치하고자 하였고 헌부 또한 청하였으니, 이는 마
땅히설치하여야한다.”
하매,영사정광필이아뢰기를,
“설치하시려는 의도는 매우 아름답습니다만, 신이 호조(戶曹)와 의논하였
는데 군자창(軍資倉)에는 나누어줄 곡식이 전혀 없고, 오래 묵어 쓸 수 없는
247)
별창(別倉)
의 곡식은 백성에게 나누어 준다 하더라도 백성이 반드시 먹을
수 없을 것이니, 명목은 아름답지만 백성이 그 혜택을 받을는지는 모르겠습
니다.”
하였다. 대간이 주청사의 상전(賞典) 및 신맹경 등의 일을 아뢰었으나 윤허
하지않았다.
◎1519년(중종14)4월28일(신묘)
심정(沈貞)을 겸 지의금부사(兼知義禁府事)로, 고형산을 호조 판서로, 권균
을 예조판서로, 이계맹을 병조판서로, 이세웅을 겸 장례원 판결사(兼掌隷院
判訣事)로, 최명창을 예조 참판으로, 김세필·조광조를 겸 동지성균관사(兼
同知成均館事)로, 김안국을 겸 전라도 관찰사(兼全羅道觀察使)로 김구를 승
정원 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로, 김식을 직제학(直提學)으로, 한충을 전
한(典翰)으로, 박세희를 사간(司諫)으로, 기준을 장령(掌令)으로 조우를 지
평(持平)으로,이연경을교리(校理)로삼았다.
◎1519년(중종14)4월29일(임진)
불시경연(不時經筵)에나아갔다.참찬관(參贊官)김구가아뢰기를,
247)별창: 군자창은 전국의 군전(軍田)으로부터 수납(收納)하여 들인 군자곡(軍資穀)을 저장하는 창고
이며, 또 별창(別倉)을 두어 잡곡을 저장하여 두었다가 백성에게 대여하여 주고 가을에 곡물을 수
납하기도하였다.
216│묵향의본향에서조선4대명필자암김구를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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