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23페이지

216페이지 본문시작

214 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4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러나 물이 들어오면 건너다닐 수가 없어 나룻배가 있었다. 빙도에
사는가난한사람이나룻배를운영하였고,술도팔았다.나루쟁이라고불렀다.
낙동리주민들은광천장을본다
예나 지금이나 낙동리 주민들은 광천장을 본다. 보령시에 속하지만 대천장을 보지 않고
광천장을보는것이다.대천장을보기위해서는광천을거쳐대천으로가야하는번거로움이
있기때문이다.
홍보지구간척사업으로오천과천북사이에제방이만들어진뒤에는천북면소제지를통
하여대천장을보는경우도있으나,차시간을맞추어야하는불편함이있다.같은천북면이지
만장은리학성리주민들은대천으로통하는시내버스가있어대천장을보는경우도많다.
6.25사변때마을은조용했으나보도연맹원으로1명이사망하였다
6.25때 낙동리본궁마을은조용하였다.인민군이들어와피해를준것도 없었고,주민들
간에 큰 갈등도 없었다. 다만 마을에서 똑똑했던 한 사람이 보도연맹원으로 잡혀갔으나 돌
아오지않았다.후에남포여늬재에서많은보도연맹원들이죽었다는이야기를들었다.
인민군치하에서활동한사람들은있었으나큰갈등도없었고,큰처벌을받지도않았다.
6.25무렵,흉년에온갖것들을먹고살았다
6.25무렵, 흉년이 들었을 때는 온갖 것들을 먹고 살았다. 낙동리 마을에서 먹었던 것은,
보리, 쑥, 칡뿌리, 도라지, 잔대, 미나리, 진달래꽃, 참나리뿌리 등이었다. 특히 보리싹을 뜯
어다가무쳐먹었다.당시사람들을살려준것은정부에서준알래미쌀(안남미),누른보리(압맥)
등이었다.각종풀과이것으로연명하였다.다행히고구마를재배하여많은도움을받았다.
낙동리본궁마을에서는물이없어둠벙을파이용하였다
낙동리 본궁 마을에는 바닷가에 작은 간척지를 만들어 농사지었으나 물이 귀했다. 농업
용수는 산골짜기와 만나는 곳에 둠벙을 파 저장했다가 사용하였다. 현재는 지하수를 양수

216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