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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하였다. 평소에 칡 줄기를 잘라 말려 두었다가 물을 축여 닻줄을 꼬았다. 닻줄은 칡을
여러 겹으로 꼬아 만들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도와주어 장벌에서 만들었다. 모두 줄
을꼬는자새를들고나와도와주었다.
옛날 풍선배에도 취사도구가 있었다. 장배도 끼니를 배에서 때워야 했기 때문에 배 한
편에취사도구를설치하였다.이것을밥채비라고하였다.
그의 셋째 큰아버지는 배 사업을 하였다. 황도 밖에서 주낙으로 홍어와 대구를 잡았
다. 이때 잡은 홍어와 대구는 생물로는 팔수가 없어서 모두 외연도에서 말려 팔았다. 홍
어와 대구는 소금을 뿌리지 않고 그대로 말려 팔았는데, 겨울이라 말릴 수 있었다. 외연
도 어린이들은 홍어를 말릴 때 입 주변에 붙은 굳은 혹살을 떼어 먹고 혼나기도 했다고
한다. 홍어배들은 겨울에 작업했기 때문에 전복되는 사고가 가끔 일어나 외연도에서도
몇 사람이 죽었다. 형제간에 나갔다가 죽는 일도 있어 남은 가족들의 생활은 참혹하였
다.부인들이해초를뜯어생활하였는데마을에서도움을줄수도없었다.
외연도에도 많은 농토를 개간하여 농사를 지었다. 논은 없고 밭만 있었는데, 산비탈
등 개간이 가능한 땅은 모두 개간하여 밭농사를 지었다. 농작물은 보리, 밀, 잡곡, 옥수
수 등이었다. 따라서 외연도에서는 쌀은 먹기가 힘들었고 주로 보리, 옥수수 등으로 밥
을 해 먹었다. 방앗간도 없어 이런 것들을 모두 절구에 찧어 먹었다. 식량이 늘 부족하여
부자라고 해야 보리밥이라도 삼시세끼 먹고사는 집이었다. 흉년이 들면 참나리 구근과
칡뿌리까지 먹었다. 참나리는 외연도에서 개나리라고 불리고 보령지방 육지에서는 호랑
이나팔꽃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백합의 구근처럼 구근이 매달려 있는데 이것을 먹은 것
이다. 구근만을 먹지는 않고, 보릿가루나 밀가루와 버무려 쪄 먹었다고 한다. 칡뿌리는
캐다가 절구에 찧거나 돌에 두드려 물에 씻으면 밑에 가라앉는 것이 있다. 이때 맨 바닥
에 있는 흰 것이 녹말인데, 갈분이라고 하여 팔기도 하고 음식을 해 먹기도 하였다. 녹말
위에는 검붉고 느른한 것이 가라앉는데 이것을 ‘능쟁이’라고 하였다. 능쟁이는 곡식가루
와함께죽을쑤어먹었다.이외에무릇도캐먹었다.
외연도에는 일제강점기인 1940년경 초등학교가 만들어졌고 야스모도라는 일본인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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