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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의풍부한어족자원이만들어낸어로문화 ?213
했다. 주로 거래된 생선은 꽃게, 갈치, 조기, 염장한 생선 등이었으며, 생물은
필요한 만큼씩 거래하지만 염장 생선은 됫박에 담아 팔았다. 필요한 것을 미리
가져가고가을추수후에돈이나곡식으로갚았다.
중선은 한 달에 한 번씩 뱃고사를 지낸다. 배가 들어왔다가 출항할 때에 고사
를 지내고 나간다. 시루떡만 한 시루 올리고 선장과 선원이 갑판에서 고사를 올
리고 떠난다. 음력 섣달이나 정월에 길일을 택해서 별도의 뱃고사를 지내는데,
이때는 무당을 불러 고사를 주관케 했다. 제보자는 덕산무당을 당골로 불렀다.
이때는집에서고사를지낸다.
인근마을에서중선을타던사람들
◆창리의지세훈씨가타던중선
1980년대까지 창리에는 중선이 다섯 척 정도 있었다. 이전에는 7~8척 정도를
소유했으나 점차 줄었지만 방조제 건립 이전까지도 다섯 척 정도는 유지했다.
중선은 인근의 황도가 가장 많이 소유했다. 황도와 달리 창리는 육지이므로 농
업에 주력했기 때문이라 한다. 주민 중 반 수 정도는 농사가 전업이었고, 나머
지 반수만이 어업에 종사했다. 어업 보다는 농업의 수입이 좋으므로 농사를 선
호했다.
제보자 지세훈(82세) 씨는 본래 태안이 신진도에서 거주했으나 부친이 이곳으
로 이주한 후로 지금껏 거주하고 있다. 섬은 육지보다 생활이 어려우므로 이주
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 중선을 탔는데, 창리 배도 타고 황도 배를 타기도 했
다고 한다. 창리에는 중선의 수가 적어 황도 배를 많이 탔다고 한다. 중선은 보
통 7~8명이 함께 작업하는데, 선장 1명, 기관장 1명, 나머지는 선원이다. 이중
가장 젊은 사람을 화장이라 하며 배에서 밥을 짓는데, 보통 20세 젊은이로, 배
에 처음 승선한 초보 일꾼이 주로 맡았다. 보통 1~2년 동안 화장을 맡으면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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