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429페이지

215페이지 본문시작

五敎
반석
위 치
아산시 영인면 구성리 구
1
소유 소유자
1 /
시대 재료
조선시대 자연석
귀산 김구는 태종 년
에 문과 급제하고 세종 문종 단종에 이르는 네
16 (1416)
임금을 섬기어 성균관 대사성으로 여년 동안 인재 양성에 전심하였으며 당대
40
에 이름이 있던 선비와 관료들이 모두 문장공의 문하에서 배출되었으니 우리나
라 역사상 최장기 대사성으로서 전무후무한 위대한 사범의 귀감으로 추앙을 받
았다.
만년에 이르러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권을 찬탈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마을
구산으로 낙향하니 현재의 충남 아산시 영인면 구성리이다
세조가 대제학의 벼슬을 내려 아홉 번이나 불렀으나 사양하고 구산촌에 오교
대를 지어 향리의 자제들을 모아 오륜의 도리를 강론하며 불사이군의 지조를 굽
히지 않았다.
세조 년
에 이르러 아산현을 혁파하여 온양 신창 평택 등 세 고을에
5 (1459)
나누어 붙이니 귀산 선생께서 상소문을 올려 그 부당함을 강력히 주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로부터 년이 지난 세조 년
에 이르러 아산현이
3
11 (1465)
복구되었으니 선생의 뜻이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서경에 이르기를 순 임금께서 설에게 명령하기를 백성들이 친하게 지내지 아
니하고 오품 오륜 이 불손하므로 너를 사도로 삼노니 공경하여 오교 오상 오
륜 을 펴서 너그러움이 있도록 하라고 하였으니 오교대의 명칭은 서경에서 취한
것이다.
오교대팔경 : 고용산명월 월앙산청풍 영인산귀운 구산촌반석 영해안낙조 공
세지모연 백석포귀범 신성포조석
_ 211 _

215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