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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3
문인 듯싶다. 갯벌이라고 부르기도 그렇고, 논이라고 하기엔 너무 척박한 땅이 모월리 주변
에너무많았기때문이다.
모월리 포구가 있던 시절, 모월리 사람들에겐 짠물이 들어오는 농토와 드넓은 갯벌뿐이
었다고 한다. 포구가 있었지만 갯벌 덕에 배를 몰고 나가 어업에 종사하기도 쉽지 않았다.
원산리에서 배가 들어와 고기를 팔면 그걸 사다 다시 서산읍내에 들고 나가 팔아서 생계에
보탰다고 한다. 그것조차 쉽지 않으면 갯벌에 나가서 황발이와 논게를 잡아다가 시장에 팔
아먹고살았다고한다.농토는갯물덕에농사가쉽지않고넓은갯벌덕에고기잡이도쉽지
않았다. 자연히 마을 인구가 쉽사리 늘지 않았을 뿐더러 가난한 마을에서 벗어나기는 쉬운
일이아니었음이분명하다.
모월리가 크게 바뀌게 된 것은 1956년쯤이라 한다. 이승만 정권 하에서 자유당과 민주당
이 선거 기간에 공약을 서로 내세우다가 자유당 쪽에서 갯벌에 둑을 세우고 염전을 만들어
보자는제안을마을사람들에게한것이다.둑을막아일단갯물이들어오더라도넘치지않
게만 만들어두면, 갯벌 일부에 농사를 지을 수는 없겠지만, 염전으로 개발해서 갯벌과 제대
로쓰지못하는농토에서소득을얻을수있을테니말이다.
가난했던 모월리 주민들에게 염전을 만든다는 핑계로 시작한 갯물을 막는 둑막이 공사
는큰돈벌이가되었다.바다에인접해있으면서도바다를삶의터전으로삼기힘들고,그렇
다고 갯물 덕에 제대로 짓지도 못하는 농사 때문에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모월
리 주민들은, 저 멀리까지 나가 갯물 막는 둑 공사에 많이들 참여했다. 돌을 날라다가 돌발
이라고불리는묶음형태로바다에넣어제방을쌓고바닷물을막는공사로마을은조금씩
경제적으로일어날수있었다고한다.
서정춘 어르신은 둑 막는 공사 뒤 간척지를 개간할 때 받은 품삯까지 기억하고 계셨다.
둑이막히고간척지가생길때,농지를확보하기위해땅을파고정리하는일의품삯은정확
히 한 평 당 그 당시 돈으로 1만원이었다고 한다. 가로 세로 3미터, 2미터 정도 땅을 정리하
면그게대충한평정도가나오는데,그걸정리했을때평당1만원의품삯을받았다는것이
다. 그렇게 번 돈으로 주변의 논을 사고, 간척지의 논도 얻거나 사서 지금의 그나마 살만한
모월리가될수있었다는게서정춘어르신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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