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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는밥집이생겼다.밥집에서밥도먹고잠도잤다.잠은여럿이함께잤고,방세는내지


,
않았다.밥을먹으면잠은그대로잤다.밥도반찬이별로없었고값도쌌다.

?


홍어뿌리에 배를 대는 것은 1980년대에 들어와 소멸되었다. 어항으로 들어오는 것이 여

?

러 가지로 편리하기 때문에 이제 모든 장배들은 어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때 녹도 주민


박상태씨가 대천천을 따라 배가 들어오지 않으면 섬 주민들이 아주 불편해진다고 민원을
?


제기하기도 하였는데, 막상 생활해 보니 어항으로 들어오는 것이 훨씬 편리하였다. 쇗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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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는것은여러가지로불편했다.
과거에는배가대천천을따라깊숙이들어와쇗개앞에배를댔고,철다리아래까지배를
댔다. 물때가 맞지 않으면 기다렸다가 만조 때 깊숙이 들어왔다. 이곳에는 구시에서 궁말
쪽으로건너가는징검다리도있었다.이다리는1979년홍수때유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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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배를 둑에 바짝 대면 뻘을 밟지 않고 상륙할 수 있었고, 낮은 곳에 대면 뻘에 빠져
야상륙할수있었다.대개간척사업이전에는쇗개와철다리근처까지배가들어왔으나간
척사업으로물길이바뀌고퇴적이이루어져배가들어오기어렵게되었다.
이곳에도 섬사람들이 단골로 드나들던 여관이 있었다. 구시 장미여인숙 옆에 있던 금성
여관이었다.밥은시내이기때문에각자먹었다.주로친척집에다니면서먹었다.
중앙시장이활성화되기전에는장사꾼들이구시장미여인숙근처에서부터송림병원까지
죽앉아서물건을팔았다.섬사람들이해산물을팔기도하였다.
옛날 철교근처까지 배가 들어올 때는 태영아파트 앞에 있는 숭어둠벙이라는 웅덩이에
배를많이댔고,이곳에서배를만들기도하였다.이곳을과거해소포(蟹所浦)라고하였다.
구시에 있는 쇗개포구가 쇠퇴하면서, 포구 앞에 간척지를 막았다. 이 간척지는 박민환씨
가 막았는데, 국가에서 막은 대천간척지와 비교하여 ‘민간간사지’라고 불렀다. 대천간척지
를막은후구시에있는쇗개가쇠퇴하였으므로쇗개앞에간척지를막을수있었던것이다.
이간척지는민간인이시원찮게막아7월에물이많이들어오면넘쳐무너지곤하였다.
홍어뿌리에섬배들이들어오면대천역앞에있던리어카꾼들이몰려오고,장사꾼들도몰
려와작은시장이만들어졌다.섬에서가져온각종젓갈,건어물등이거래되었다.생선이많
이 나오는 봄에는 젓거리인 등퍼리나 빈댕이가 들어와 갈머리나 신대리 주민들이 리어카를
끌거나지게를지고나와사다가젓을담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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