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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성어촌계에서는바지락양식장을개인별로나누었다.

남,
염성어촌계에서는 바지락 양식장을 개인별로 나누었다. 논이나 밭처럼 경계를 두었고,

자기 것은 자기가 관리하는 것이다. 공동으로 양식하면 관리하기가 어려운데, 개인적으로



자기것을관리하니까관리가더잘된다.상풀같은곳에서종패를잡아다넣고개인적으


로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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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성어촌계는1964년에만들었다.
염성어촌계는1964년도에만들어현재에이르고있다.처음만들당시에는학성리에염
성어촌계와회덕어촌계가있어각각운영되었었으나현재는염성어촌계로합병되었다.염
성어촌계의초대계장은정홍원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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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생이주민들은즉은여에서박하지나낙지를잡는다.
염생이주민들이맨손으로어로활동을하는곳은주로즉은여이다.즉은여는마을서쪽,
바다속에있는바위인데,배를타야들어갈수있다.사람들이접근하기어려워해산물이
많기때문에염생이주민들이어로활동을하는터전이다.주로낙지,박하지등을잡는다.
밤에는불을켜들고잡았다.최경환님의기억은석유를묻힌솜방망이를들고다니면서
잡았다.‘남의불에게잡는다.’라는말은여기에서생겨난말이다.
염생이마을에는2개의독살이있었다.
염생이 마을에는 2개의 독살이 있었다. 하나는 맨삽지에 있었고, 하나는 마을 서쪽에
있었다.
맨삽지부터낭어덕까지박대진씨가덤장을맸다.
학성리염생이마을에1980년대덤장을맸다.덤장은맨삽지에서부터낭어덕까지길게
맸는데말뚝을박고그물을친후,그물의아래는뻘에묻고,물이들어오면배를타고그
물을들어올려말뚝에매달았다.그러면덤장안쪽으로들어온고기는모두잡혔다.민물
장어,도미,농어새끼등다양한고기가많이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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