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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을 놓아 돌아가셨다. 작은아버지는 저녁에 아편을 맞았는데, 철사 손잡이가 달린 조그


,
마한쇠그릇에아편을녹여끓여서자기몸에주사하였다.당시에고대도사람들은대부분

?


아편을 맞았다. 삽시도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안정된 생활을 해서 그런지 아편 맞는 것을

?

보지못했다.


작은아버지는홍어배사고로1960년경2월23일돌아가셨다.흑산도밖에서돌아가셨는
?


데시신도찾지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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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당시 안면도에는 공산주의자들이 많았다. 그들 중 일부가 삽시도로 들어왔고, 삽시
도에피난와있던이향우씨와박영삼씨사위김홍도씨,박영삼씨아들박창래씨등에게구
타와함께위협으로총을쏘았고,칼로얼굴을베기도하였다.공산주의자들이이들을안면
도로 끌고 가려고 배에 태우고 출발하였다. 그러나 배가 고장나 고치는 사이에 이향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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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경찰들이반격을가하여,공산주의자들을제압하고모두사살하였다.
이렇게 된 것은 박영삼씨가 공산주의자들한테 양조장에서 내린 소주와 돼지고기를 충분
히주었기때문이다.공산주의자들이이것을먹고취했기때문에제압할수있었다고한다.
양조장의 술독에 숨었던 경찰들이 발각된 것은 당시 삽시초등학교 교사였던 두 선생이
밀고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이들은 주민들과 같이 외연도로 피난하였으나, 외연도에서
해군들에의해살해되었다.돌을매달아바다에빠뜨려죽였다고한다.
삽시도에서 온 공산주의자들 중에서도 한 사람이 살아남았다. 죽은 척하여 살아난 것이
다.그러나수복후에결국죽었다고한다.
삽시도에는 진짜 인민군 1개 소대쯤이 들어오기도 하였다. 이들이 들어와 부잣집이라고
박영삼씨네를 불태우려고 하였으나, 양조장을 하는 박영삼씨가 잘 대접하여 불을 놓지 않
았다고한다.
수복 이후에는 안면도의 공산주의자들을 50여명 싣고와 삽시도의 학교 건물에 가두어
두었다. 이들을 심사하여 삽시도 북쪽의 바다에 돌을 매달아 빠뜨려 살해하였다. 시신이
바다에떠다녔다.
21살 때인 1959년 12월 8일 입대하여 의무병으로 근무하였고 제대 후에는 매제의 소개
로충북단양의석회석공장에서일했다.
석회석 공장을 약 3년 다닌 후에 비단장사를 하였다. 대구에서 비단을 받아 등짐으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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