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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고 8살 때 보리방아를 찧었으며, 12살 때 아버지 두루마기를 꿰맸다. 그리고 빨래
도 도맡아 했는데 당시 빨래는 잿물을 받아 그 물로 빨래를 삶아 빨았다. 옷을 뜯어 빨
고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을 하여 다시 꿰매야 빨래가 완성되는 것이었다. 13살 때 아버
지와할아버지의바지저고리를빨아꿰맸다.주변사람들이모두놀랐다.겨울에빨래할
때는샘물이얼어얼음을깨가면서빨았다.너무손이시려울기도하였다.
그녀가 17살 때 6·25가 터졌다. 어느 날 초저녁, 미군의 고무보트가 석대 앞으로 왔고,
건너 간드리에서 인민군들이 총을 쏘았다. 총알이 쌩쌩하고 지나갔는데 그녀는 담벼락
에 숨어 쳐다보았다. 이튿날 아침 바닷가 샘 옆에 있는 굴에 미군 1명이 부상당한 채 숨
어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구호를 해 주었고, 이후 미군은 큰봉 산제 지내는 바위 아래
로 갔다. 이때 미군이 김춘화의 동생 김선예(1947년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고 한
다.(이 부분은 2019년 5월 6일 김춘화씨의 동생 김선예(1947년생, 미국 센디에이고 거
주) 증언) 마을 사람들이 미군을 도와주려고 접근했더니 미군이 손짓으로 가라고 하여
접근하지 못했는데 무창포에서 인민군이 배를 타고 와, 미군을 데려가고 미군 시신 1구
를 떠메고 갔다. 죽은 미군이 있는지는 떼메고 가는 것을 보고 알았다. 이때 석대 사람
들은한사람도다치지않았다.
김춘화의 아버지는 1953년에 사망하였다. 옆집 최길남네 돼지가 병으로 죽었는데, 이
돼지를 잡아 무창포에 가서 팔고 돌아오는 길에 배가 뒤집혀 사망한 것이었다. 돼지를
팔고서 술을 많이 마셨고, 그날은 특히 안개가 짙게 끼었다. 최길남과 그의 손자, 그리고
아버지가 타고 석대로 돌아오는데, 어린 손자가 노를 젓는 것을 아버지가 빼앗아 젓다가
배가전복되어사망하였다.이때최길남과그의손자는무창포로헤엄쳐나왔다.
석대의 산제당은 무창포에서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봉우리인 큰봉(첫봉) 아래에 큰
돌이있고,이돌에서산제를지냈다.세집이모아서남자들이지냈으며제를주관한사
람은아버지였다.축문도읽었다.
그녀는 20살 쯤 시집을 갔다. 시집은 처음에는 부자였다. 시할아버지가 왕실에서 홍
릉을 조성할 때 석공으로 일하러 가서 돈도 벌고 벼슬도 얻었기 때문이었다. 이 시할아
210 보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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