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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수리시설로수몰된마을이야기
일 어르신이 40대가 되신 무렵 자취를 감추었지만, 당신의 기억 속에서만큼 생생했다. 아무
래도 젊으셨을 당시 넉넉했던 그 시절을 추억하시면서 마을의 모습과 사람들의 모습 역시
마음깊이새겨진듯했다.
마룡리는 마을에 농사를 하러 갈 때면 큰 용대기를 높이 들고서 풍물을 치고 소리를 했
다. 이월 초하루면 제주나 경상도, 전라도에서 영등날을 지내며 연풍을 바라듯, 마룡리는
동제를 지냈다고 한다. 어르신은 어릴 적 서당에서 글을 배운 덕인지, 사실 지금은 한문을
잘 모르신다고 하셨지만, 제를 지낼 때 종종 축을 읽으셨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단편적인
모습에서도 마을에 대한 추억, 애착, 나아가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이 자못 가득하신 게 느
껴졌다.
팔월이면 대보름이라고 한바탕 놀고, 정월이면 볏가리를 세워 달집을 태웠다는 정겨운
모습들도 아낌없이 흘러나왔다. 지금은 신작로를 닦으면서 없어진 큰산벌의 산제, 서낭제
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예로부터 한국 민중의 삶에서 영향을 가장 많이 끼쳤던 신이 산
신과서낭이다.나이지긋한어르신의기억한편에는서낭제를지내기위해서응당해오던
일들이다. 가령 새미에 고인 물을 퍼내고 맑은 새 물 솟는 것으로 밥도 하고 목욕하던 모습
들도엿볼수있었다.
이밖에도 어르신은 마을의 전설들을 많이 알고 계셨다. 깊어서 ‘짚은개’, 용이 들어갔다
나왔다한다고하여용구녕,여우가다니며사람을홀린다고여수고개등,오랜토박이들이
가물가물 떠올릴 법한 이야기들도 곧잘 나왔다.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마을의 변천, 갯가가
막히고 먹고 살 수 없어 떠난 주민들, 두레 대장도 있고 그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끼리 두레
를 하던 모습들, 풍물치고 풍속을 즐기던 옛 농촌, 쌀계니 혼인계니 계를 하면서 마을마다
돈을 갹출하던 모습까지도, 곁가지로 늘 붙어서 떠오른다. 용구멍(용구녕)이라도 남겨뒀어야
한다는아쉬움섞인말도이어진다.
사실마룡리는다른마을과견주어서그다지얻은것이많은마을은아니었다.물을막고
나서 힘들어진 것은 어촌계였다. 마을 어촌에서 고기를 잡고 조개를 캐다 먹고 살았던 이들
목전의생업에차질이생긴것도맞다.남은이들은생강과마늘농사도지었고벼농사도지
으며 그 규모가 마을에서 두레를 이룰 정도로 타격이 크진 않았다. 어떻게든 먹고 산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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