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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3
동네 사람들 역시 고기며 조개 따위가 넉넉해 굴밭도 일구고, 누구는 굴을 까고 누구는 굴
을길렀다고한다.말그대로부족함없던호시절이었다.
어르신은 4, 50년도 더 된 부석장이 설 때를 회고하며 당시 모습이 어떠했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마을에서, 장에서 고기를 팔았던 모습이나 마을의 풍속, ‘짚은개’ 저수지
와용구멍에관한전설등도,여든이넘은나이가무색하게선명히기억하고계셨다.
그러나 좋았던 추억은 옛일이 되었고, 갯물이 오가던 마룡리에 둑이 쌓이고, 갯물이 막히
고 농토가 들어서면서 이 사정은 갑자기 바뀌었다. 문자처럼 상전벽해다. 수산자원이 풍족
했던 마룡리는 그렇게 물이 막히게 되었고, 물에 살던 바지락과 석화 등 생계를 책임져주던
이들이점점사라졌다.농사를지을땅이넓어지고쌀이많이나는것이능사는아닌셈이었
다. 전답과 저수지는 갯물이 올라와 짠 기가 도는 바람에 처음에는 마을에 농작을 하기 어
려운 상황인 데다, 주민들은 당장 먹고살 거리가 없어졌으므로 마룡리를 떠난 이들도 많았
다.이때문에어르신은마룡이서산부석서땅이야제일크지만,앞의이유탓에사는사람
은120호수정도뿐이고,젊은이들도없다며아쉬운듯말씀하셨다.
이광일어르신은마을의‘짚은개’저수지가들어선내력과당시상황에대해서도많은말
씀을 해주셨다. 당신의 회고로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이미 마을에는 둑이 만들어져 있었다
고한다.본격적으로논을만들고저수지를만들며개간한것은한국전쟁이후였다.먹고살
기 위해서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그런 것으로 보이는데, 제아무리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하지만 당초 어민들이 많았던 마룡리에게는 되레 독이 되었다. 앞의 말처럼 갓 개간된 논은
갯물이 들어 무엇이든 잘 자랄 수 없어 흉작이 들었다. 당장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갯가에서
조개나 살을 매어 고기를 잡는 것이 더 급한 주민들에게 갑자기 생겨난 논밭은 무용지물이
었다.
저수지를 만들고 기대와는 달리 실망이 많은 전답이 원망스러울 법도 하지만, 어르신께
서는그도다좋은모습으로기억하고계셨다.어르신의총기덕에당시나락을일구어도일
흔석가까이농사를지었던모습이며,당시마을에서수세를얼마씩받던기억도,수리계의
모습도,어르신을통해잠깐씩들어볼수있었다.
그뒤를따라나온기억은마룡리의두레와옛풍속이었다.비록마룡리에서두레는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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