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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안면도해안선-01
1960년대안면도해안선-02
1980년대안면도해안선-03
(?‘일제강점기안면도와아소상점’)
(?‘일제강점기안면도와아소상점’)
(?‘일제강점기안면도와아소상점’)
간척사업 전에 소금 또는 해산물을 잡고 외부로 팔았던
를지으려고이주하는경우도많았다고한다.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당암리의 김명순은 선친이 소
한편 간척공사는 도로망도 바꾸었다. 이전에는 이동거리
금운반선을운영하였던경험을이야기했다.태안읍도내
를 줄이기 위하여 갯벌에 돌을 박아서 썰물 때 가로질러
리와 원북면 방갈리에서는 ‘살’을 매어서 고기를 잡았다
다녔다. ‘감질’이 그러한 이동로였다. 주민들은 ‘감 건너
는 증언을 들었다. 도황리 김영석은 둘째 누님이 조개젓
다닌다’ 또는 ‘감 뛰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灣)을 가로지
을 팔아서 친정에 논 3마지기를 장만한 후에 혼인하였다
르는원뚝이조성되면서원뚝이새로운도로가되었다.
고했다.해산물을장에내다팔때의독특한관행도접할
본 조사는 1980년대까지 이어졌던 태안군의 간척사업과
수 있었다. 소원면 의항리 주민들은 생굴을 팔기 위해서
직간접적으로연관된사실과그에따른변화상에대한주
태안장을 갈 때, 전날 저녁에 곡식을 소량 챙기고 태안읍
민들의 증언을 듣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하였다. 혹 조사
장산리에 도착한 후 주인과 함께 밥을 먹고 이튿날 아침
자의 경험 부족으로 중요한 사실에 대한 추가 질문이 이
에장을봤다고한다.자신이직접가마에불을지펴서소
어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때로는 피면접자의 증언을
금을구웠던경험이있는주민이없었음은다소안타까웠
엉뚱하게이해하기도했다.그렇지만해방전후의간척사
다. 증언을 하는 주민들은 다만 어릴 때 지켜보거나 어른
업은 기록조차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설령 있다 하더라
들로부터이야기였다
도 자료가 분석된 경우는 드물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태안지역의 주민들은 반농반어의 생활을 한다고 응답한
이번 조사는 현대사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 할
다. 그러나 1970년대까지도 농사는 대부분 자급을 위한
것이다. 나아가 피면접자 중에 지난 일을 구체적으로 기
곡식 재배였고, 어로작업은 부업에 머물렀다. 해산물 유
억하는 사람도 많았고, 일부는 일기까지 쓰고 있었다. 향
통망이활성화되지못한때문이다.이런상황에서주민들
후 일기와 사진 등의 자료를 추가로 확보하고, 여기에 공
은 간척공사를 농토를 가질 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다. 따
공기관에 보존하고 있는 문서 또는 신문 등을 더한다면,
라서 간척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긍정
태안의 간척사를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
적이다. ‘하지 감자’로 끼니를 해결했던 주민들이 간척지
한다.
논에서수확한‘쌀로밥을해서먹었다’는증언은이런배
경에서나오는것이다.간척했다는소문이퍼지면외부에
서 ‘육답(陸畓)’보다 토지 가격이 싼 ‘간사지 논’에서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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