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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암 김구와 덕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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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랜 유배 생활, 47세의 짧은 수명 등으로 세상에 남긴 필적이
많지않다. 일찍이중국사람이자기의글씨를보배로여긴다는말을
전해 듣고는 더 이상 쓰지 않았다고도 한다.
김구의 필체를 인수체(仁壽體)라고 한다.
필력이 경건(勁健)하였
25)
고특히행서(行書)로유명하였다.
26)
그는종요(鍾繇)로부터왕희지(王
羲之)로이어지는 필법을본받았는데,
학서(學書) 과정에서 왕희지
27)
글씨를기본으로하면서, 위로거슬러올라가종요에이르렀다. 종요
는예서와 해서에 뛰어났다. 장평도(長平度)의측면에서 세로의 길이
가긴, 갸름한스타일의구양순체와는달리비교적납작한꼴을하는
것이종 · 왕의특색이다. 김구는이런 스타일을 계승하였다. 전서나
예서의측면에서이렇다할작품이없는것도특이점이라하겠다. 김
구의 서예는 한 마디로 해서와 행서의 필법에서 왕희지를 잘 배운
사람이다. 초서는특기가아니지만, 중국풍과는다른조선풍으로분방
하게구사하여, 뒷날양사언(楊士彦)이나황기로(黃耆老) 같은이들의
초서를 열어준 것으로 보인다.
조선영·정조때의학자로서화에감식안(鑑識眼)이높았던이계(耳
溪) 홍양호(洪良浩: 1724∼1802)는 ‘제김자암필적(題金自菴筆蹟)’이라
는 제목의 제발(題跋)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암 김선생의 도학과 절행(節行)은 기묘사류(己卯士類)에게 존숭받았
으니, 정암과 충암 등 제현과 진퇴(進退)를 같이 하였다. 문장과 서예는
24) 安邦俊, ?隱峯全書? 권1, 1b-2a, ?五倫歌 幷序? “又於漢中, 得己卯名賢金自菴
絿科試名紙於閭閻間, 愛而寶玩. 後贈其子孫, 以爲杜家之寶.”
25) ‘인수체’란 김구가 仁壽坊에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26) 자암과 함께 행서로 유명한 사람은 聽松 成守琛,南窓 金玄成이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초서’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27) 魏의 鍾繇(종요)와 晉의 王羲之, 세칭 鍾王의 서체를 이어 받아 仁壽體를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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