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6페이지

19페이지 본문시작

그림이야기
월전 장우성은 한일합방 2년 후인 1912년 5월 충주에서 태어나
두 살 되던 해 여주로 이사해 어린 시절을 보내고 19세 때 서울로
와서 그림공부를 하여 우리 현대 한국화의 중추적 역할을 한 화가로
2005년 94세로 타계할 때까지 열정적으로 삶을 이루어낸 우리
나라의 화가이다
그는 일제시대와 신문화의 격동기를 몸으로 부딪쳤으며 6.25
전쟁과 정치의 변화와 시대의 아픔도 직접 격어 내야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5살 때부터 할아버지께 천자문을 배웠고, 그 후 삼촌들
과 함께 글방에서 사서삼경을 모두 배울 수 있었다. 부친이 한학자
였고 엄격한 유교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 학식 있는 집안의 자손이었다
그는 그림을 배우기 이전에 유년기부터 가정학습으로 시와 서예를 배웠고
그것이 훗날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펼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어려서
부터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회초리를 맞아가며 엄한 한문교육을 받았는데 이때 천자문, 소학, 명심보감
등을 두루 익혔다. 그날 배운 것은 그날 저녁에 책을 덮어놓고 줄줄 외웠다고 한다. 그 결과 매년 칠월 칠석에
열리는 시회(詩會)에서 장원을 한 적도 있었다. 훗날 시작(時作)과 고전한시 해석의 탁월함, 그림과 함께
시를 짓는 자유자재한 구사는 이러한 유년기와 학습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글공부 외에 그림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네 집에서 좋은 그림을 보여 준다고 하여
가서 섬세한 인물화그림 한 점을 보게 되었는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초상화 작가는 이조 말엽에 이름을
날린 석지 채용신이었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후 그는 앞길에 대해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집안 어른들은
그를 문장명필로 만들어 입신양명을 시키려는데 그는 화가를 꿈꾸고 있었다. 그는 그가 갈 길은 예술이
라고 굳게 다짐했다고 회고록에 기록하고 있다.
19세에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그림 공부를 위해 서울로 올라온 월전 장우성은 이당 김은호의 화숙(畵塾)
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서울로 올라갈 때 아버지는 달을 좋아하는 천성과 그가 자란 마을 이름인
사전(絲田, 마을이름)에서 한자씩 따 월전(月田)이란 호를 지어주시며 이다음에 훌륭한 화가가 되면 쓰라고
하셨다.
http://seosan.cult21.or.kr

19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