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6페이지

19페이지 본문시작

관청에 전달해주는 스파이들도 있었다. 뒤에 나올
사례에서 그 이야기를 할 것이다.
어사가 뜨기 전에 지방에서 미리 알았다 :
어사의 임명과정에서부터 비밀이 새나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사가 도착하기도 전에 지방 관청
에서 미리 대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어사
들은 폐포파립(弊袍破笠) 즉 헤진 옷과 부서진 갓을
착용하고 과거시험 낙제생 행세를 하면서 도보로
이동한 데 반해, 한성에 있던 지방 관청의 스파이
(암행어사의 상징인 마패)
들은 말을 타고 신속히 이동해서 어사에 관한
어사 이외의 관료들도 마패를 이용했다.
사진 출처 : 교육과학기술부, 중학교「국사」
정보를 보고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아무래도 어사보
다는 지방 수령들이 좀 더 빨리 대응할 수 있었다.
중종 29년 5월 14일(1534.6.25) 조정에 올라온 경상도 암행어사 오세우의 보고에 따르면, 그가
옥포성(지금의 거제도 옥포동)에 당도하자 그의 얼굴을 확인한 경비병들이 성문을 즉각 닫아걸었다.
오세우가 온갖 방법으로 타일러도 경비병들은 들은 척도 안했다. 경비병들은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겨우 성문을 열어주었다.
“어사가 떴다!”
는 첩보를 관아에 전달하고 관아에서 관련 자료를 숨기는 데
필요한 시간만큼 오세우는 성문 입구에서 대기해야 했던 모양이다. 경비병들이 오세우의 얼굴을 보자
마자 성문을 닫아걸었다는 것은 옥포 관청에서 오세우의 인상착의까지 미리 확보해두었음을 의미
하는 것이다. 한성에 있는 스파이들이 현지 관청에 정보를 전달해주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사례는 실록에서 많이 찾을 수 있다. 오세우의 사례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어사의 회유와 엄포에도 불구하고 성문을 꽁꽁 닫아두고 아예 열어주지도 않은 고을이 많았다. 그런
경우 암행어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포기하고 그냥 지나가는 것뿐이었다.
임지에서 어사의 일거일동이 낱낱이 체크됐다 :
폐포파립 차림의 어사들은“과거시험에
낙방하고 세상을 유람하는 선비입니다”
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임지를 돌아다녔지만, 이런 옷차림과
행동은 도리어 그들의 신분을 드러내는 표지가 되곤
했다. 옷차림은 남루하지만 눈망울만큼은 또랑또랑
한 젊은 선비가“이곳 사또는 청렴합니까?”
, “세금
을 과하게 걷지는 않습니까?”등등의 질문을 하고
다녔으니, 어느 누군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지방에서는“암행어사로 의심
되는 선비가 우리 고을에 들어왔다”
는 정보가 삽시
간에 퍼지곤 했다. 대부분의 경우, 어사의 향후 이동
경로에 관한 소문까지 상세히 퍼지곤 했다.
(조선시대의 지방 성문)
이런 분위기를 보여주는 내용이 조선 후기 민담
사진은 김해읍성의 북문. 경남 김해시 동상동 소재
http://seosan.cult21.or.kr

19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