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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고전
주자어류
주희
문 성 환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주자(
, 1130-1200)는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자이자 스승이었다. 주자는 결코 부유하거나 영향
력 있는 집안 출신이 아니었다. 주자의 아버지 주송(
)이 관직 생활을 하긴 했지만, 주자는 사실상
가난한 집안의 수재형 인물에 가깝다. 그는 불과 열아홉의 나이로 중국 과거시험을 통과했다. 그리고
거의 혼자 힘으로 남송(南 )의 사상계를 짊어진 위대한 학자가 되었다.
주자의 학문은 선배들의 작업을 한 데 모아 묶어내는 데서 시작되었다. 주자는『시경( 經)』
『서경
( 經)』
『역경( 經)』
『예기( 記)』등의 경서(經 )에 방대한 주석 작업을 완성했을 뿐 아니라,
『논어(? )』
『맹자(
『대학(
『중용(
을 사서(
)라는 이름으로 묶어 주석 작업과
함께 편찬하고, 이를 경전화시켰다(죽기 사흘 전까지도 주자는『대학』
에 관한 경구 해석에 매달렸
다!). 그런가 하면 주자는 친구인 여조겸과 함께 자신이 존경하는 북송대의 선배 유학자의 글을 편집
하여『근사록(近
이란 책을 편찬하기도 했다.
주자에 의해 편찬된 사서는 유학의 공식적인 해석으로 인정되어 1313년부터 과거 시험의 척도가
되었다. 주자학의 영향력은 1912년 과거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 사실은 주자의
사유가 700여년간 한 세계(사실상 중국은 당시 세계 그 자체였다)의 학문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 문인들과의 강학 및 대화를 기록한 방대한 양의『주자어류(
는 바로 이러한 주자의 세계관과 학문에 대한 태도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주자학의 가장 충실한 기본
텍스트이다.
이와 같은 주자의 철학 정신은 한 마디로‘집대성(
이란 말로 요약된다. 요컨대 주자의 철학적
관심은 새로운 개념의 창안에 있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주자의 작업이 단순히 흩어져있던
선배들의 자료를 한 데 모아놓았다는 식의 의미로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집대성이란, 말 그대로
한 데 모아 크게 이루었다는 뜻이다. 어떤 의미에서 주자는‘풀어서 조술하되 창작해서 짓지는 않는다’
는 공자의 술이부작(
) 태도를 온몸으로 이어받은 학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 데 모아 크게 이루었다는 주자의 학문은 성실과 근면, 그리고 끈기로 똘똘 뭉친 한
인물이 펼친 위대한 작업에 대한 존경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주자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한 철학자
는 아니었지만, 이곳저곳에 산재해있던 선배들의 보석 같은 사유를 일관성 있는 구도로 분류?탐구한
품격 높은 철학자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주자학은 앞선 문헌들에 대해 유학의 전통적 해석들에 전혀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다. 이차적 해석에 지나지 않을 듯한 이 주석 작업을 우리는 주자학
) 혹은 리기론( 氣 )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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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_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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