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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은 1남3녀를 두었다. 아들 김만대(金晩大, 1727~1801)는 음직으로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에 올랐다. 김만대가 사익(思翊), 사정(思靖), 사준(思竣), 사욱(思昱) 등 4남1녀
를 둠으로써 이후 주로 호산 1,2리를 중심으로 자손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묘소들도 주로 마을 주변
에 있었으나 지역 개발로 인해 공주시 사곡면에 묘역을 마련하여 모두 이장하였다.
참고 : 마을 한 가운데에 경주김씨 계림군파 친척으로 김동연의 재종(6촌)인 김구연(金九衍, 1699~1742)과 김
구연의 아들 김기대(金器大, 1714~1775)의 묘와 묘비가 있다. 김구연은 숙종의 제2계비 인원왕후(仁元王
后, 1687~1757) 김씨의 동생이며 생부는 김남중의 셋째아들 김주신(金柱臣)이다. 통훈대부로 사복시정
(정3품)을 지냈고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아들 김기대의 생부는 김세연(金世衍)인데 김구연 역
시 아들이 없어서 계자로 들어왔다. 김기대는 문음으로 이천부사가 되었다가 1756년(영조32년) 식년문과
에 갑과로 급제한 뒤 승지와 대사헌 등을 거쳐 예조판서까지 올랐다. 그러나 그의 직계 후손이 이 마을
(호산리)에 살지 않았다고 하니 왜 이곳에 묘를 모셨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16] 안동김씨 김몽열
| 金夢說
<1683년(숙종9년) ~ ? >
조선 후기의 인물로 안동김씨(安東金氏) 13세이며 익원공파(翼元公派) 음봉면 월랑리 입향조이다.
아버지는 진사 김간(金侃)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다. 부인은 칠원(漆原) 윤씨(尹氏)이다.
선대는 당진 순성에서 살았는데 순성에 전염병이 심하여 음봉 월랑으로 피하여 왔다고 한다. 묘는
음봉면 월랑리 가치리(加峙里)에 있다. 제사는 음력 10월15일이다.
[17] 김해김씨 김삼승
| 金三承
< ? ~ ? >
김해김씨(金海金氏) 62세이며 금녕군파(金寧君派) 영인면 백석포리 입향조이다.
아버지는 가선대부 중추부사 김진철이고 어머니는 영천이씨(永川李씨)이다. 부인은 안동권씨(安東權
氏)이다. 안성 일죽에서 이주하였으나 내력은 잘 모른다. 묘는 아산 동록에 있다고 하나 실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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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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