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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문화원
문화의 향기를 담아내는 소담옹기
[11] 효자 김현 <金鉉>
1595년(선조 28) ~ 1637년(인조 15, 추정)
적군 앞에서 아버지 몸 감싸 살리고 죽다
조선 중기의 효자이며 김해김씨 집안의 사람
이다. 김해김씨 집안에서 처음 아산의 음봉면
대동(송촌리, 동암리 일대)에 들어와 살기 시
작한 김합(金?)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제용
감봉사(종8품) 벼슬을 지낸 김인지(金仁祉)
이다. 그의 다른 이름인 자(字)는 왕이(王耳)
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과 형제에 대한
우애가 뛰어났다. 유교 경전에 대한 조예가 깊
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끝내 과거에
▲ 김현의 묘
응시하지 않고 처사로서 깨끗한 선비의 지조
를 지켰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죽을 먹으며 슬퍼하고 날마다 성묘를 했다. 아
버지가 새어머니를 들이자 생모처럼 효성으로 모셨다. 병자호란(1636~1637) 때에는
병든 아버지를 업고 인주면 걸매리까지 피난을 갔다가 적군을 만났다. 적들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므로 자신의 몸으로 아버지 몸을 감싸 안고 대신 칼에 맞아 죽으며 아버지의
목숨을 구했다.
오랜 뒤인 1675년(숙종 1
년)에 이 사실이 조정에 알
려져서 그의 효자 정려가
내려졌다. 아산시 음봉면
송촌리에 정문이 세워져서
지금까지 전해진다. 1829
년(순조 29)에 대학자인
전재 임원회(任憲晦)가 그
의 효행에 관하여 지은 정
려기가 남아 있다.
효자 김현 정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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