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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에는밭농사만지었는데,보리,조,고구마등을심어먹었다.



소도는 논이 없고, 밭이 많다. 섬 위는 평평하기 때문에 대부분이 밭으로 개간되었다.


1950~60년대,어려운시절에는보리,조,고구마를심어먹었다.가난한집에서는고구마

를많이먹었다.최경환님기억으로는조도많이먹었다.
맨삽지에는주민이거주하지않고묘지만있었다.
맨삽지에는주민이거주하지않았다.다만정상부분평평한곳에윤씨네묘지가있다.
염생이마을서북쪽술등에는해당화와마르새가많았다.
염생이 마을 서북쪽 술등에는 해당화와 마르새라고 하는 사구식물이 많았다. 마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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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잘라 김발을 엮는 재료로 사용하였고, 해당화는 뿌리가 당뇨병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
져외지인들이모두캐갔다.
마르새로김발을엮을때는,가을에푸른잎을따다가햇볕에말린다.잎이마르면동그
랗게말리고,이것을틀에서고드랫독을넘겨가면서엮으면김발이된다.마르새로엮은김
발은김이잘떨어지는장점이있어돼지기름을바르지않아도되었다.짚으로만든김발은
돼지기름을발라야김이잘분리되었다.
학성리염생이마을간척지는일본인이막았는데해방후개인에게불하되었다.
학성리염생이마을에있는간척지는일제강점기일본인들이막았다.최초의제방은밤
섬으로 건너가는 제방이었고, 농사에 필요한 물은 저수지를 막아 공급하였다. 이들 논들
은해방후소작인들에게분배되었고,대금의상환을마친후에는개인소유가되었다.
작은염전은중낭굴에사는3사람이소유하였다가정영복씨단독으로소유하였다.
학성리밤섬옆에있는작은염전은학성리중낭굴에사는황종영,정영복,김동옥씨소
유였다가 나중에는 정영복 씨 단독으로 소유하였다. 염전에서 일한 사람들은 학성리 주
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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