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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서산천수만의옛모습
중선을 부리던 시절에 가장 어려운 것은 선원을 구하는 것이었다. 젊고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음력 정월 보름 이전에 지목해서 약속해 두어야 한다. 식구들을
두고 배를 타야 했기에 이들은 선돈을 요구했다. 때문에 중선업을 하기 위해서
는 땅이라도 팔아서 선돈을 지급해야 했다. 간혹은 선돈을 받고도 조금 더 많이
준다는 다른 선주가 있으면 다른 배로 가기도 하므로 선원 관리가 무엇보다 중
요했다. 선원으로는 30~40대를 선호했지만, 과거에는 60세까지 배를 탔다. 이
와관련해서는다음과같이이야기한다.
“(창리주민은) 다 어업을 했죠. 다 중선배를 다녔어요. 얼추 다 중선배. 우리
도 한 척 부리다 두척 부리다 세 척 부리다 그랬었고요. 다른집 들도 한척 집이
세집네집있었죠.그때가지금보다사람살기는돈은못벌었어도좋았죠.활기
차고,우리동네가그당시는한60-70호밖에안되었는데,선원들을채우려면
부족하죠. 기관장이나 그런 사람들은 기계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니 외지분들
모셔오고, 지방 사람만은 부족하니까. 보통 4척, 5척, 6척 부렸거든요. 4척만해
도48=32이니누구든지선원들이었죠.
배들들어오면풍요롭게그랬죠.고기같은것많이들어오고.각자집안에배
들들어오면선원들나누어먹으려고젓갈같은거나눠먹으려고좋은걸루젓
갈도 담아서 가져오고, 조기서부터 갈치, 대하 같은 것은 쪄서 말려서 엮어서.
가지고 와서 나누면 육지에서 콩, 쌀, 별거 가져와서 물물교환 하고. 그때는 풍
요럽게그랬죠.”
이 마을에서도 중선이 조업하던 중에 돌풍을 만나 전복되어 선원이 전원 사
망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 신안 앞바다인 임자도 주변에서 새우젓잡이를 하던
중에 바람이 많이 불어 전복되었다. 제보자의 배도 인근이 가거도에서 조업 중
이었기에 그 소식을 듣고 임자도로 가보았지만 배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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