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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수리시설로수몰된마을이야기
에그만두었다.
담배 이후 주로 심는 것은 배추, 감자, 생강, 마늘 등이다. 모든 수확은 장사꾼이 직접 마
을에 와서 사갔다. 때로는 농협에 직접 납품하여 판매하기도 했다. 시월에 마늘을 심고 부
직포를 덮어 겨울을 난다. 마늘 캐기 한 달 전에 마늘쫑을 뽑는다. 전통 육쪽 마늘을 주로
심었는데 최근에는 스페인산 마늘을 심기도 한다. 스페인산 마늘은 외부 상인이 직접 와서
모두 가져간다. 과거에는 품앗이가 있어 돌아가면서 일을 도와주었다. 그러면 일을 하는 집
에서 점심을 준비하여 제공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품앗이가 모두 사라졌다. 기계 농법
이 발달하기도 했지만, 판매를 위해서 농사를 짓기보다 자신이 소비할 정도로만 농사를 짓
기때문이다.점심도이제는집에서준비하지않고음식을배달시켜먹는다.
신송리는 설날, 추석, 동지를 지금도 지킨다. 동지를 애동지, 중동지, 노동지로 구분하여
팥죽을 쒀 먹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세시풍속은 사라졌다. 기계농법이 발달하면서 마을 주
민들이 서로 어울려 농사를 짓는 일은 거의 없다. 최근에 신송리 이장은 양배추를 심었지만
밭떼기로 장사꾼에게 넘겨 장사꾼이 트럭을 마을까지 몰고 와 수매해간다. 이런 식으로 신
송리의전통농법은급격하게변화한것이다.
신송리는 과거에 초상이 나면 상여가 나갔다. ‘고집’이라고 하여 상여를 보관하던 집이
따로있었다.상여를사서쓰기도했는데상여가나갈때에는상여소리를하는이가마을에
있었다. 회닫이도 하고 전통식으로 장례를 모셨지만 6~7년 전부터는 하지 않는다. 40여 년
전에는 ‘초례지낸다’고 하여 마을에서 혼인식을 거행하였지만 지금은 모두 해미나 서산에
가서혼인식을한다.관혼상장례의식도모두사라진것이다.
현재 신송리는 저수지 위쪽을 신송리 2구, 아래쪽을 신송리 1구라 부른다. 1구는 지금도
저수지 물을 사용하지만 2구는 사용하지 않는다. 마을의 환경과 분위기가 달라 소통은 많
지 않다. 사람 숫자가 적어 체육대회 할 때에만 모일 뿐이다. 동네에는 많은 모임이 있었지
만 지금은 동갑계 정도만 유지된다. 상포계도 10여 년 전에 없어졌다. 신철광 씨는 생활 여
건이과거보다나아졌고,사람들이모여서로어울려노는일도줄었기때문이라고한다.마
을회관에 모여 윷놀이도 했지만 지금은 정월에만 조금 할 뿐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
면서 더 이상 마을회관에 모이지 않게 되어 마을 사람들과 어울린 기억이 매우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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