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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의풍부한어족자원이만들어낸어로문화 ?205
고사지내고.그믐고사배에서그믐고사지내고,정월초하룻날.첫해가돌아왔
다고 뱃고사 지내고, 정월 초사흗날은 영신제 지내니까 영신제 앞에다가 배 다
대놓고,지금은다막아서육지가되었지만영신제앞에가배대는데가쪽있었
어요.서로가좋은자리에대놓고깃발을빨리꽂고빨리내리려고좋은자리에
대려고그래야돈많이번다고해서.경쟁이아주심했어요.그러면초사흗날아
침에 지내고 초사흗날 기 올리고서 또 지내고, 또 밤새 영신제 통밤 꼽박 새고
지내고초나흗날아침에한번또지내고다끝나죠.”
이처럼 뱃고사는 섣달 그믐날과 정월 초하루, 영신제 지내는 날 당맞이 고사
등을 지냈다. 이외에 여러 달 동안 벌이가 시원치 않으면 무당을 불러 큰 굿을
했다. 제보자 배재구 씨의 부친이 중선을 부리던 시절에 어획량이 급감해 인천
에서 십여 명의 무당을 불러 큰 굿을 했다고 한다, 당시 굿을 하던 중 집안에 있
던 골동품을 모두 가져다가 바다에 던져 깨버렸는데, 귀신이 붙었다는 이유에
서 청자 등의 그릇을 깼다고 한다. 이처럼 중요한 때를 제외하고는 인근의 지역
무당을 불러 큰굿을 벌였다. 무당은 뱃고사를 지내기 전에 먼저 영신당에 인사
를드렸다고한다.
뱃고사는 동네 사람들이 나오기 이전인 새벽 해뜨기 이전에 바닷물이 들물
되었을 때에 배에 올라 지낸다. 복은 들어오는 것이므로 썰물에는 고사를 지내
지 않는다. 제물로는 특별히 소머리를 사용하는데, 임경업 장군을 모신 마을이
기에 돼지머리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외에 삼색실과, 조기, 농어, 민어
50)
등의 포, 술, 고사떡 등을 제물로 올렸다.
사고 없이 식구들이 무탈하기를 기
원했다.
50) 일제강점기로부터 1970년대까지 가양주를 담지 못하도록 했기에 수시로 술조사가 나왔다. 술조사를 하
는 사람을‘술주사’라 불렀는데, 걸리면 벌금을 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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