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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소를 당샘물로 목욕시켜 당으로 올려 보냈다. 이때 소는 고삐를 뿔에 감고, 당집 진입
로근처에풀어놓는데,스스로저죽을자리에섰다고한다.
정월 열나흘 밤에 소를 다 잡아서 제를 올리고, 보름날에는 배 부리는 집에서 뱃기를
들고 당으로 올라갔다. 그러면 당주가 뱃기의 끝에 길지를 매어주고, 쇠고기를 한 근쯤
나누어주면 자기 배 있는 곳에 뛰어가 뱃고사를 지냈다. 이때 제일 먼저 뛰어가 뱃고사
를 지낸 배가 그해 가장 많은 고기를 잡는다고 믿었다. 이때 아이들은 뱃고사 떡을 얻어
먹기위해몰려들었다.
정월보름날 해가 질 무렵, 당주와 무당들은 당집에서 바슴마당 또는 거름마당이라고
불리는 마을 앞 공터에 내려와 굿판을 벌였다. 이때는 농악을 치고 피리젓대 불고, 무당
들이 춤을 추는 흥겨운 굿판을 벌인 것이다. 이때 배 부리는 사람들은 돈을 놓고 절하기
도 하였다. 바슴마당에는 미리 큰 솥을 걸어놓고 쇠고기, 내장, 껍질 등을 삶아 국을 끓
이고, 마을 주민 모두가 나왔다. 부정이 있어 당집에 올라가지 못한 사람도 모두 나왔고
처녀총각도모두나와구경하였다.굿판은새벽2~3시에끝났다.
그가 군에서 제대한 1960년쯤, 삽시도의 당제는 없어졌다. 당제를 지내기 위해 마을
회의를 열었는데, 일부는 찬성했지만 일부에서는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당에서 당굿한
다고 부자가 되고 고기가 많이 잡히느냐고 반대를 해 싸움이 벌어졌다. 이때 박영삼이
없애는쪽편을들어결정하였다고한다.
당제는 없어졌는데 누구도 감히 당집을 건드리지 못했다. 지골 맞을까 봐 건드리지 못
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집 근처에 소를 매기도 하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당집을 훼손
하기도하여흉물스러워지자,마을사람들이그에게부탁하여당집을헐도록하였다.이
에 그는 쾌히 승낙하고 당집을 헐어 좋은 목재는 대천제재소에서 제재하여 교회 건축에
사용하였다.
이정우는 군대에 가기 전에 김용현으로부터 기독교를 전도받았다. 박영삼 소유인 간
이학교 사택 자리에서 가마니를 깔고 예배드리기도 하였다. 특히 삽시도의 실권자 박영
삼이허락하여건물까지내주었고처녀총각30여명이모이는것도반대하지않았다.
204 보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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