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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박병선(朴炳善)(1925~1995)
1925년12월25일예산에서태어났으며호는추연(秋淵)이다.예
산보통학교(24회)를졸업하였다.서울소재중동중학교를거쳐일
본(山口)의대에다니다광복되어조국에돌아온후1948년서울의
대(3회)를졸업하였고이어서울대부속병원에서제1외과수련의
및전문과정을마쳤다.
1950년한국전쟁이터지면서의사의부족은절대적이었다.1951
년군의관으로복무하면서수많은전상자를치료하였으며거기에
서닦은의술은개업의로서훗날큰경험이되었다.1957년6년여
를복무하던군에서중령으로예편하고예산에서박외과의원을개
원하여지역민의질병치료에큰도움을주었다.
박병선
그는가난한지역민에게무료진료도베풀고무의촌에대한순회무료봉사와군공중보건의를맡
아군민의보건향상에크게기여하였다.그는향토문화에대하여깊은관심을갖고1955년예산문
화원창립때군에있으면서도많은후원을하였고박외과를개원하고는직접참여하여1961년3
대예산문화원장에선임되어향토문화발전을위한튼튼한기반을조성하였다.그는1967년7대국
회의원에공화당공천으로출마하여인술로닦은기반과조직에적극적인활동에힘입어당선되
는영광을안았다.그러나의정활동을익힐시간도없이선거소송에휘말려임기말인70년12월
24일선거소송에서패하여의원직을상실하였다.
그는정치에서본연의전문의료인으로돌아와보다더적극적인의료사업을하고인술로베푼인
간관계를돈독히하였다.정치에대한그의열망은식지않아1988년신민주공화당으로제14대국
회의원선거에출마하였다.그야말로20여년만의재도전이었다.신민주공화당의녹색바람으로그
는국회의원에당선되었다.그는야당으로당선되었으나당이3당합당으로여당국회의원이되어
보사분과의원을맡았다.그러나1992년자당의공천에서탈락하자국민당으로재도전했으나낙선
하였다.
국회의원재직시보사분과의원으로서1967년에경제개발에따른공해의심각성을간파하고공
해방지법을개정발의하여공해방지및환경보전정책의기틀을마련하였으며그법에따라한국
공해방지협회를창립하여초대회장에취임하였다.14대국회에서도국민건강과환경문제에관심
을갖고입법활동을하였다.
1992년낙선후조용히여생을보내던그는1995년2월70세를일기로세상을떠났다.그의묘는
당진군면천면에있으며박외과의원은아들호규(虎圭)가대를이어운영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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