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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고령화되어자식들이있는도시로떠났고,대천시내로이주하기도하였다.2023

남,
년현재,단4가구만거주하는데노인혼자만거주하는가구도있다.




소도에서는1950년대까지당제를지냈다.


소도(추섬)에서는 1950년대까지 당제를 지냈는데, 마을에서 깨끗한 사람을 정하여 당


주를맡겼다.당주로정해지면집주변과당산에새끼줄을드리워아무도들어오지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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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성에사는이웃도들어가지않는다.샘물도먹을수없었다.이렇게3일동안부정을
가렸다.당제기간에아이를낳아야되는임신부는섬밖으로나갔다.
젯날은정월초사흘이었는데,당산나무밑에정갈하게추린짚을깔고제를올렸다.제
물은육고기는쓰지않고,떡을해가지고올라가고,밥이나국은당산에서끓여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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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으로 뱃기가 올라가지는 않았다. 당제에 사용된 그릇은 당주 집에서 가장 좋은 그
릇으로사용하였다.
원래당집은없었고나무만있었는데,현재까지남아있다.
최경환님의아버지(최동철)는1961년소도에서천북면학성리로이사하여김양식을하였다.
최경환 님의 아버지는 1950년대에 천북면 학성리에 산과 논을 사 놓았고, 1961년 집을
사서이사하였다.가재도구와가족들을최경환님네배한척에싣고한번에왔다.가족은
많아도이삿짐은많지않았다.당시대천으로갈까했는데,땅이있어서학성리로이사오
게되었다고전한다.당시최경환님은17살이었다.
최경환님가족은학성리로이사온뒤에도소도에서처럼김양식을대규모로하였다.당
시학성리주민들은4~5떼의김발을맸으나최경환님아버지는12떼를맸다.뿐만아니라
고대도주벅에서생선을받아다가육지에팔아돈을벌었다.장사에수완이있어많은고
객을확보하고있었고,고대도에서는고기값을결정하기도하였다.
소도에는거의전지역에김발을맸다.
1950~1960년대 추도에서 김 양식을 많이 하였다. 북쪽 해안이 파도가 약하여 좋았으
나, 사방에서 모두 김 양식을 하였다. 다만 안면도 영목 맞은 짝은 경사가 급하고 물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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