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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다.


,
제물은 떡과 밥, 삼색실과 정도였고, 초이튿날 마을의 풍물패와 함께 올라가 새벽에 지

?


냈고, 다음날에는 샘제를 지내고, 마을 안에 있는 팽나무에서 거리제를 지냈다. 팽나무를

?

거리땅이라고했다.


한상옥씨가 어렸을 때는 뱃기를 가지고 당집에 올라갔으나 점차 없어지고 그냥 당제만
?


지냈다고 한다. 송도에서 사용한 뱃기는 5색으로 된 깃발로, 한복집에서 사다가 사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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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다.
송도에서 어업을 하는 사람들은 뱃고사를 지냈다. 대개 정월 열나흗날 지냈는데 5색 뱃
기를달고,돼지머리,떡,밥,삼색과일등제물을마련하여선주가지냈다.당제와상관없이
지냈다. 어떤 경우는 봄에 출어하기 전에 13매 날이나 14매 날에 지내기도 했다. 선주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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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히지냈다.
송도에는 5~6척의 유자망 어선이 있었다. 이들은 5~6명의 선원을 태우고 외연도 근처에
가서 광어, 강개미, 도다리 등을 잡았다. 당시 강개미는 바로 죽어 얼음을 채워 상자에 담지
만, 광어는 최대한 살려 바닷물이 순환되는 간에 넣어가지고 왔다. 이들 유자망 어선은 1주
일이나 10일 만에 들어오는데 많이 잡으면 오색 깃발을 달고, 술을 마시면서 흥겹게 들어
왔다.
송도 주민들은 섬 동쪽의 목다리를 지나 송학리 안산으로 통행 하였다. 따라서 육지 송
학리 쪽으로 많이 소통하였고, 고정리 한여 마을 쪽으로는 소통하지 않았다. 한여 마을 사
이에는썰물때도깊은갯고랑이있어소통하기어려웠기때문이다.그러나보령화력발전소
가만들어진뒤에한여마을이없어지고주민들이송도바로북쪽에있는솟바리마을로이
사 온 뒤에는 소통을 많이 하였다. 발전소에서 제방을 만들고 다리를 놓아주어 자주 통행
했기때문이다.
한상옥씨는 송도에서 이주한 뒤에도 송도에 출입하면서 낙지를 잡는다. 봄에서 가을까
지 잡는데, 봄에는 구멍이 낮아 잡기도 쉽고 크기도 크다. 그러나 제일 좋은 때는 10~11월
이다. 이때는 많이 잡히기도 하지만 맛도 좋다. 한상옥씨는 낙지철이 되면 1달에 15일은 낙
지를 잡고, 하루에 50여 마리를 잡아 판다. 할아버지한테 전수된 기술이 있어 낙지를 잘 잡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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