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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민란을막을수있다는관료들의판단과크게다르지않은것이다.
이몽학을사살한임억명과김경창의포상에대한논의가벌어졌을때,
선조역시이전의행적에상관없이민란진압에도움이되었다면포상해
야한다고강조하였다.민란군의추국시건강보다추국이우선이라고
했던것과마찬가지로,이몽학의난에대한선조의입장과태도가상당히
강경했다.이제까지경험하지못했던외란중에발생하여체제를위협했
던내란에대한불안감이컸던만큼,포상에대해서상당히적극적이었던
이유와배경을읽을수있는것이다.
이몽학을참수한임억명과김경창은가선으로,태근과홍주성공격을
지연시킨이희와신수에게는6품실직이제수되었다.순안어사이시발과
홍주목사홍가신은통정대부로,병사이
시언과수사최호는가선대부에올랐다.
처음에상을받지못했던박명현도가선
대부에올랐고,추국을담당한신하들도
포상되었다.
선조는이몽학의난을진압한청난공
신을비롯해서,호성공신과선무공신의
책봉에대한의지가강했다.비망기로공
신책봉을강력하게지시하였고,이를통
청난공신임득의추증교지
해무너진기강의확립과원만한정국운
영을도모하겠다는의지를밝히기도했다.
이에따라1604년(선조37)청난공신1등에홍가신을비롯하여,2등
박명현과최호,3등신경행과임득의등다섯명이책봉되었다.그런데
1601년(선조34)영의정이항복과우의정김명원이홍주토역공신으로1
등(홍가신),2등(박명현,최호),3등(병사이시언,순안어사이시발,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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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당시이몽학의난과청난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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