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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한테 배운 기술로 많은 낙지를 잡아 팔았다. 낙지 구멍만 보아도 크기까지 알 정도이다.



낙지구멍의 특징은 부릇이라는 파란 구멍이 있는 것이다. 이곳은 낙지가 숨쉬는 숨구멍으

?

로 근처에 들어간 구멍도 있다. 두 구멍 사이는 대략 50㎝ 정도이다. 봄에는 낮게 들어가
손만넣어도잡히는정도이다.잡은낙지는송도의식당에팔거나어머니가대천에나가팔
았다.
송도 안쪽 바다, 즉 현재 회처리장이 있는 곳은 썰물이 되면 갯고랑만 남고 모두 드러나
는 곳이었다. 바닷물이 들어올 때는 솟바리 마을 앞으로 해서 들어오고, 썰물 때도 그곳을
나간다. 목다리 쪽으로 들어오는 물이 목다리를 넘쳐야 솔섬 안으로 넘어온다. 물의 주 통
로는고정리솟바리앞이었다.
송도 안쪽 바다는, 김양식은 하지 않았지만 각종 해산물이 풍부하였다. 낙지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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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과 바지락 등도 많았다. 송도 남쪽 바다와 같았다. 송도 주민들은 갯고랑 건너 고정리 쪽
에서도 해산물을 잡았다. 갯고랑은 고정리 솟바리 마을 앞과 송도 위섬 북쪽에서 건널 수
있었다.
송도의 서남쪽 바다, 즉 용구녕 앞바다에는 주벅도 맸었고, 발전하여 낭장망도 맸다. 주
벅은 큰 나무 기둥을 세우고, 자루 같은 그물을 매단 것이고, 낭장망은 나무 기둥 대신, 큰
돌과희를매다는것이다.
5~6가구가 이런 그물을 매고 고기를 잡았다. 잡힌 고기는 까나리, 실치, 열치, 빈댕이, 오
징어,꽃게등이었다.까나리나실치같은작은고기는삶아서장벌에말려팔았다.
송도는붙어있었지만윗섬과아랫섬으로불렸다.윗섬은동쪽인송학리안산쪽이고,아
랫섬은서쪽이다.마을도2개로구분되어불렸고
당집도각각있었다.당산이윗섬과아랫
1)
섬에각각있었던것이다.당제는각각지냈으나정월초이튿날같은날에지냈다.
윗섬에는 여러 성씨가 모여 살았고, 아랫섬에는 유씨가 많이 살았다. 총 가구 수는
50~60가구되었는데윗섬에좀더많이살았다.
윗섬에서는 정월 초이튿날 당제를 지냈다. 1950년생인 한상옥씨가 청년 시절에 당집에
올라가 당제지내는 일을 거들었다는 증언으로 보아 1970년대까지 당제를 지낸 것으로 보
1)반이달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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