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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고운봉(본명:고명득,高明得)(1920.2.9~2001.8.1)
본명은 고명득(高明得)으로, 1920년 충청
남도예산(禮山)에서태어났다.어릴때부터
가수를 꿈꾸던 중 1937년에 예산공립농업
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부로 무작정 올라와
일찍부터조선악극단에서활동하였다.
태평레코드 문예부장 박영호를 찾아가 예
명을 얻고 전속가수로 채용되었다. 곧바로
악극단소속으로순회공연에참가하면서데
고운봉
덕산온천지구유 내의 선창노래비
뷔를 준비한 끝에, 1939년에 일본에서〈국
경의부두〉를발표하여정식데뷔하였다.고운봉의창법이맑고곡도애잔한내용이많아‘순
정가수’로홍보되었다.〈국경의부두〉와〈아들의하소〉가알려지면서인기가수가되었고,이
후〈남강의추억〉등을계속히트시켰다.
1940년에는오케레코드로옮겼고,이듬해발표한조명암작사,김해송작곡의노래〈선창〉
이공전의인기를기록하게되었다.
1942년비내리는쓸쓸한부두를배경으로이별의아픔을담은을발표하면서대중
가요가수로데뷔한뒤,
생은 육십부터> 등 많은 노래를 불러 인기를 끌었다. 짙은 우수가 깔려 있으면서도 깔끔하
고점잖은창법과적당한울림으로깊은호소력을발휘한가수라는평가를받았고,말년까지
도텔레비전가요프로그램에출연하는등활동을쉬지않았다.
1998년한국가요발전에이바지한공로로옥관문화훈장을받았고,2000년6월에는고향인
예산군덕산온천지구안에‘선창노래비’가세워졌다.2001년8월1일노환에따른뇌경색으
로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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