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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하며 풍장을 잘쳤기 때문에 늘 함께 활동하였으나 사망하였다.
장인환은 청춘가, 노랫가락에 능하였으며 축원소리도 잘하여 이종원이 축원소리를
하지 못할 때는 그가 부르기도 하였다. 스스로를 풍각쟁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
으로 성격이 호방하였으며 새로운 문화에도 능동적이어서 창가를 배워 즐겨 불렀다.
타지역의 민요와 양산도, 노들강변, 태평가도 잘 불렀다.
특히 상쇠로는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한다. 박상쇠의 풍장을 배우지 않고 옥계리의
마을 풍장을 잘 쳤으며 덕산장에서 수시로 공연하였다 한다.
1933생으로 고덕면에서 활동한 소리꾼이다. 두레패 상쇠를 지낸 아버지의
전봉남
영향으로 풍장과 지역 전통소리에 능했으며 특히 회심곡을 노랫말로 하는 상여행상소
리 선소리꾼으로 활동하였다. 전봉남은 현대 민요도 많은 노래를 배워 즐겨 부르는
인물로 예산군지에 수록되고 이 책에서는 생략된 소리도 진도 아리랑 등 17곡에 이를
만큼 흥이 좋으며 민요를 좋아하는 인물이다.
1905생으로 대술면 장복리에서 두레 소리의 선 소리꾼. 고령에 채록하여 논
조종술
매는 소리와 자리개질 소리 두 곡 모두 짧은 소리가 전하나 예산의 동쪽 차령산 줄기
마을에서 부른 논매는 소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자리개질 소리는 현재까지
는 예산에서 채록 된 유일한 추수 현장소리로 가치가 있으며, 그의 논매는 소리와 자
리개질 소리, 어린아이를 달래는 달강달강, 자장가 등이 예산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1926생으로 예산읍 발연리 55번지 거주하는 생존한 소리꾼. 예산에서 태어
김덕수
나 6세에 홍성군 은암면 하봉리 상가에서 살다가 26세에 다시 예산으로 귀향하였다.
아버지 김종한은 마을에서 침을 놓는 사람으로 일생을 살았다 한다.
김덕수는 흥이 매우 좋고 남이 하는 것을 보면 잘 기억하여 자기의 흥으로 노래를 바
꾸어 부르는 것에 능숙하다. 이런 이유에서 소리를 전문으로 배우지 않고도 주변에 소
리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의 노래를 스스로 익혀 많은 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2장 예산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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