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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의풍부한어족자원이만들어낸어로문화 ?199
창고에소금과섞어서절여두며,배에서물건을내릴때에새우젓독에담았다.
마룡리에는 중선을 접안할 공간이 마땅치 않았기에 마룡리 중선은 창리포구
에 배를 매두었다. 배를 대 놓고 겨울철에는 집으로 돌아와 생활하다가 봄이 되
면 다시 일하러 창리로 간다. 창리포구에서 그물작업도 하고 출항 준비도 했는
데, 마룡리는 개펄이 급경사가 져서 어구 손질을 할 수가 없다. 때문에 창리에
서모든작업이이루어졌다.
◆창리배재구씨가전해주는3대째무역,간척,중선부리던이야기
창리에서 중선을 부렸던 분 중 한 명이 배남복 씨이다. 현재는 고인이 되었는
데, 그의 후손인 배재구 씨를 통해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경주 배
씨인 배남복 씨는 여러 세대 동안 창리에 거주했다. 현재 기억할 수 있는 조상
은 제보자의 증조할아버지인데, 증조부인 배응모 씨는 나무 무역을 했는데, 안
면도에서 벌목을 해서 마포로 가져다가 팔았다. 혹은 신안에서 새우젓을 구입
해서 마포에다 내다 팔았다. 나무와 새우젓을 판돈으로는 쌀을 구입해서 다시
되팔았다. 이렇게 원거리 무역을 했기에 몇 달 만에 돌아왔다. 배가 들어오면
엽전이 가득 담긴 마대자루를 일꾼들이 가지고 집안으로 계속 옮겼으며, 안방
다락에 보관했는데, 그것이 꽉 차서 마루에서 부엌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도 돈
을 채웠다고 한다. 당시에는 그렇게 돈을 보관해도 도둑맞지는 않았다. 제보자
는엽전이들어오던것은기억하지만당시상선의모습은기억하지못했다.
조부인 배견모 씨는 인근 지역의 간척을 해서 농지를 만들었다. 칠전리 사기
점과 창리 경로당 앞의 원적골 앞, 안면도 창기리 앞 등을 간척했다. 그러나 39
세로 일찍 돌아가셨다. 조부의 장손이었던 부친 배남복 씨는 중선을 부렸다. 마
을 뿐만 아니라 인근에서 가장 큰 집을 소유했으며, 최고 부자로 기와집을 지었
는데, 당시 수덕사 절을 짓는 목수와 장인들이 와서 이 집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청기와를 얹었었다고 하나 지금은 남아 있지를 않다. 제보자의 외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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