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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순국선열 김태호(殉國先烈 金泰昊)
순국선열 김태호는 경주인으로 전북 익산군 여산면 원수리에서 태어
나 어려서부터 글공부에만 열중하여 주위의 칭찬을 받았다. 어느 날 천
도교에 관한 책을 읽고 마음에 깨달은 바가 있어 천도교를 믿기 시작하
였다. 그러나 유학에 젖어 있는 아버지를 이해시킬 수가 없어 선생이
25세 되던 해에 논산군 논산읍 등화리로 이사를 하여 천도교를 열심히
믿고 주변의 천도교도들과 긴밀한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맺어지고 일제의 만행이 자행되어 항일의 운동이 전국으로
퍼져갈 때 선생은 독립운동에 자금이 필요한 것을 통감하고 세 번이나
전국을 돌아다나며 자금을 확보하고 3천량의 자금을 임정에 보내고 논
산에서는 자기 논과 밭을 팔아서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가산을 다 헌금한 후 가족들을 부양할 수가 없어 누이에게 부
양을 부탁하고 상경하여 천도교령 손병희 선생을 찾아가 지하운동을
계속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선생의 나이 40세가 되던 해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논산으로 내려와 논산, 강경, 부여, 공주 등지에서 독립만세
시위의 주동자로 활약하였다.
1919년 3월 12일 논산읍내에서 독립만세운동시위를 하기로 하고 선
생은 이백순, 손필규, 이근옥 등과 함께 태극기를 그려 마련하고 12일
오후 3시경 논산읍민 백여명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며 시위행진을 하자 이에 부응하여 많은 군민이 동참하여 대한독
립만세를 외쳐 그 함성이 시가를 뒤흔들었다. 이에 당황한 일본 헌병은
발포하며 시위를 저지하였다. 그 때 총탄에 맞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현
장에서 염상오가 총상을 입고 시위군중들은 흩어지고 김태호 선생은
논산시 독립유공자 금석문 /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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