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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서산천수만의옛모습
에 종사하고자 해도 할 수 없었다. 이에 주민들 다수가 홍성이나 안면도 등지로
나가 중선을 탔다. 홍성은 수룡동이나 오도리, 서창의 배를, 안면도는 황도의
배를주로탔다.
간월도 주민이 소유한 중선은 동지나해, 남지나해 등의 원양어업 보다는 인
근에서 연안어업을 하는 배로 간월암 밑이나 홍성 서부 가는 길목에서 조기나
갈치를잡았다.조기와갈치는소금에절여서판매했다.
창리
창리에는 중선이 많을 때는 열 척 정도가 있었고, 적을 때도 대여섯 척이 있
었다. 반면에 작은 배인 댓마는 별로 없었다. 방조제 건립 즈음에 동력선이 보
급되면서부터 소형 어선의 수가 늘었다. 중선이 열 척 정도 있으면 전 주민이
중선에 종사할 수 있다. 중선은 연평도와 목포를 오가며 조기와 갈치, 새우 등
을 잡았다. 선주가 선장이 되기도 하지만, 선장을 별도로 두기도 한다. 배에는
선장, 화장과 다섯 명의 선원이 동승한다. 선장은 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책임지고, 화장은 선원과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추가로 밥을 지어야 하기에 이
두사람에게는수입의일부를더지급한다.
고기를 팔아 수입이 발생하면 반을 잘라 선주에게 주고, 나머지 반으로 선장
을 비롯해 선원들이 나눈다. 남은 것 중 한 몫 반씩을 화장과 선장에게 지급하
고,남은것으로선원들이한몫씩나누어준다.
잡은 어물은 곧바로 염장하며, 서산장, 양대리, 지산리, 강당리 등에서 판매
했다. 서산장에는 남자들이 지게에 지고 새벽 4시에 출발해서 60리를 걸어서
장이 열리는 아침 시간에 도착하도록 갔으며, 지산리와 강당리 등에는 여자들
이 어물을 머리에 이고 직접 돌아다니며 팔았다. 어물은 곡식으로 바꾸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업하러나갈때는소금과어구만을싣고나간다.고기나새우를잡으면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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