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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松)으로 울창하게 우거져, 이 토성은 백제시대 수성(守城)으로서는
가장 뛰어나고 그 규모는 크고, 지금도 남아있는 형적은 흥미롭다.
산성 내부는 넓고 직선코스로는 100m이며, 200m의 원형코스도 만
들 수 있는 정도다. 동남(東南)부터 동북(東北) 끝에 경사가 되어, 멀
리 서북(西北)의 큰 평야를 바라볼 수 있고, 동시에 눈앞에 무한천(無
限川)을 가는 하얀 돛단배를 바라보던 시대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산성에 이조시대(李朝時代: 조선시대) 유학자의 분묘가 있
고, 그 곁에는 웅대한 비석이 있으며, 그 옆에는 천년이라고 전해 온
노송나무가 고독히 하늘 높이 치솟고, 영구적인 역사를 말하며 있는
것 같다.
(2) 금오산성(金烏山城)
향천사(香泉寺) 뒤쪽, 즉 금오산(金烏山) 정상에 소규모 토성 터가
있어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3) 토성민보(土城民堡) : 흙으로 민간에서 쌓은 보루
금오산 최고봉이 옛날 민보라고 한다. 또 시대 미상(未詳)인 민보
의 흔적이 뚜렷이 보일 뿐이다.
대흥면(大興面))
(1) 임존성(任存城)
봉수산(鳳首山) 정산에 있음. 석축(石築)으로 주위(周圍) 5,194척
(尺) (14정(町) 25간(間) 4척(尺)), 그 속에 3개소 우물이 있음. 사비성
(泗泌城=지금 부여) 함락 후 도침(道琛) 백제장군 흑치상지(黑齒常之)
가 다른 장군 사타상여(沙?相如)들과 축조했다고 함.
20 예산군지(19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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