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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配) 강릉김씨 진사 김경윤(金慶胤)의 딸 사이에 외아들 효일(孝一)을 두었는데 그는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행으로 의금부도사에 특증되었다. 김효일의 둘째아들 김진성이 아들 다섯을 낳아 특히 자
손이 많이 퍼지게 되었다. 셋째아들 김내현은 통사랑으로 성릉참봉을 지냈으며 부인 합천이씨(陜川
李氏) 봉사(奉事) 이영(李英)의 딸과 결혼하여 네 아들을 두어 후손이 많이 늘어났다. 이후 미암공의
후손은 염치읍, 탕정면, 음봉면을 중심으로 크게 번창하였다.
[15] 경주김씨 김동연
| 金同衍
<1706년(숙종32년)~1801년(순조1년)>
조선 후기의 문신 관료이며 경주김씨(慶州金氏) 계림군파(鷄林君派) 12세(世)로서 아산시 지역, 탕
정면 호산1리 입향조이다. 마을에 거주하던 김정국(金正國, 80세)씨의 7대조이다. 선대는 연기군 전
의 일대에 거주하였다.
문과 급제 후 좌의정에까지 오르고 경림부원군(慶林府院君)에 봉해진 충익공(忠翼公) 김명원(金命
元, 1534~1602)의 5세손이고 익산군수 등 내외관직을 거쳐 자헌대부 행첨지중추부사에 오른 김수
렴(金守廉)의 현손이다. 문과에 급제한 뒤 대사간, 대사성, 대사헌 등을 거치고 공조·형조·예조판
서를 역임한 정효공(貞孝公) 김남중(金南重, 1596~1663)의 증손이며 진사시에 급제한 뒤 호조정랑
에 오른 김홍진(金弘振, 1627~1671)의 손자이다. 조모는 한산이씨(韓山李氏)이며 예조판서 이기조
(李基祚)의 딸(1626~1700)인데 묘가 탕정 호산리에 있었다. 아버지는 김정신(金鼎臣, 1648년
~1717)이며 부정(副正)과 청풍도호부사를 지냈다. 묘는 연기 전의에 정배 청주한씨와 합장되어 있
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후배(後配)인 김해김씨(金海金氏)로 김백수(金白壽)의 딸이며 역시 묘가 호산
리에 있었다.
김동연은 3남 중 셋째 아들이며 자는 회숙(會叔)이고 봉정대부(정4품)로 관상감 교수를 지냈다. 사
후에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부인은 전주유씨(全州柳氏)이며 부종관 유덕옥(柳德玉)의 딸
이다.
그가 언제 왜 이 마을에 왔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할머니 한산이씨와 어머니 김해김씨의 묘가 이 마
을에 있던 것으로 보아 그의 아버지 김정신이 처음 왔을 수도 있지만 집안에서 그가 처음 들어온 것
으로 보는 의견에 따라 그를 입향조로 본다. 혼인으로 인한 입향은 확인되지 않는다. 마을에 또 다른
친척의 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사패지였을 가능성도 있으나 또한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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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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