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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수리시설로수몰된마을이야기
경로당을 다시 지어 특이하게 한 마을에 경로당이 둘이 있다. 길이가 길고 원주민이 적다보
니외지인들이들어와자리잡기에매우좋은조건이된것이다.
고풍리에서 가장 가까운 산은 면암산으로 500m 위에 산제당이 있었다. 정월 초닷새 날
저녁에 마을 주민들이 올라가 제를 모셨다. 통돼지를 잡아 삶은 후 이를 짊어지고 올라가
제물로 올렸다. 제를 올린 후 제물은 모든 마을 주민이 균등하게 나누었다. 국물까지 똑같
이나눌정도였다.이를일러‘산제모신다’고했다.산제모시는곳은당집이나당목은없었
고 단만 윗단 아랫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백설기, 튀각 등 제물을 모두 준비한다. 제물을
준비하는 이는 부정을 타지 않는 사람을 선택해 몸을 하는 여자가 있는 집은 피했다. 서해
권 씨는 10여 년 전까지 산제에 참여하다가 지금은 참여하지 않는다. 현재에도 마을 주민
대여섯 가구가 산제를 모신다고 하여 후속 조사가 필요하다. 고풍2구는 별도로 서낭당을
모셨다. 정월 보름에 제를 올렸는데 당집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광현씨는 서낭당에
가서 떡을 얻어먹은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제를 올리기 일주일 전부터는 목욕재계를 했
고,황토를사방에물려외부인들의출입을막았다.어머님이자식을위해정성을드린것으
로기억하고있다.
수몰된 고풍2구는 특이하게 석수가 많았다. 고풍2구의 서해권 씨는 돌로 여러 기물을 만
드는 석수일을 역사적으로 오래 이어왔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상도 이 분들 조상
이 조성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광현씨는 그렇지 않다면서 이들이 주로 제작한 것은
맷돌, 매생이(돌절구)같은 생활용품이라고 한다. 고풍2구에는 마을에 돌이 워낙 많았다. 오
석 같은 돌이 마을에 많아 쉽게 재료 공급이 된 것이다. 생활용품을 만들어 운산장에 가지
고만 가면 쉽게 팔려 석수로 종사하는 집이 몇 집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고풍2구 주민
들은 힘이 세다고 소문났다. 지게 지고 물건 운반하는 데에는 다른 마을 주민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정도로 고풍2구 주민들은 일을 잘했다. 고풍2구 가운데에는 고풍천이 흘렀
다.물이맑아아이들의놀이터였다.
고풍2구에는설날을가장중요한명절로쳤다.각성받이마을이아니라전주이씨가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일종의 동족마을이었다. 그래서 설날이 되면 마을의 분위기가 떠들
썩했다.동네에는머슴도여럿있었다.이들은가을이되면농사지은것으로새경을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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