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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르러 부모의 묘에 달려가 곡했다. 끊어졌다 다시 소생해 추후에
죄를 벗고자 하는 감정이 조석으로 무덤에 올라 눈물을 其린 곳에
초목이 모두 말랐다. 가정 갑오 11월 16일에 병들어 일어나지 못했
으니 향년이 47이었다. 예산 종경리 자좌 오향의 언덕에 장사 지내니
선세 산소에 따른 것이었다. 그 후 57년에 선묘 조를 당해서 특별히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공의 문장은 기이하면서도 높지 아니하고 위진(魏晋)에서 나왔으면
서도 곁으로 예능에 미쳐서 음율을 알아서 악정을 배수하여서는 명
하여 아악을 바르게 하고자 하였다. 16세에 한성시에 장원했으며 20
세에 사마시에 급제하고, 26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사마시에 응할 적
에 선정 김모재(金慕齋)가 시관이 되었는데 자주 감탄하고 칭찬을 가
하여 그 시권에 비답하여 이르길, “한퇴지의 지음이요 왕희지의 글이
라.” 하고서 드디어 발탁해서 두 장원으로 뽑았는데 국조에서 드문
바이었다. 필법이 강건하여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으며 세상이 인수체
라 일컬었으니 대개 공이 인수방에 산 까닭이었다. 후에 중국 사람들
이 사가는 바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서 끊고 쓰지 않아서 세상에 전
해짐이 드물다.
고의 휘는 계문(季文)이니, 대흥현감이며 좌승지에 증직하고, 조의
휘는 성원(性源)이니 성균관 사예로 이조참판을 증직하고, 증조의 휘
는 예?(禮蒙)이니 예조판서로 시호는 문경공이다. 비 숙부인 전의이
씨는 고려 태사 도(棹)의 후예다. 김해김씨를 취하니 만호 진현이 그
아버지이다. 능히 부도를 이어나가서 아름답고 경사스러웠다. 2남 1
녀를 낳으니 장남 용(鎔)은 일찍 죽고, 다음 균(鈞)은 진사에 장원하
고, 딸은 전력부위 이사항(李思航)에게 시집갔다. 균이 2남1녀를 낳
제5장 인물(人物)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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