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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다스림을 도모하고 돌이켜서 요순의 군민으로 사문을 홍기하
는 것으로 스스로의 임무로 생각했다. 처음에 괴원으로부터 뽑혀서
홍문관에 들어가 정자가 되었으며 저작·박사·수찬·교리를 역임하고,
곧 이조좌랑을 배수하고 정랑으로 옮겼다. 사간원 헌납·사간과 장악
원정을 말미암아 다시 홍문관에 들어와 응교·전한과 직제학이 되어서
항상 예문관 응교와 성균관 사성을 겸하였다. 호당에 사가하고 승정
원 동부승지에 올랐다가 좌승지로 옮기고, 부제학으로 배수하였다.
잠깐 있다가 북문에 화가 일어나니 곧 기묘년 11월 15일이었다.
공은 정암·충암으로 더불어 하룻밤에 모두 내려 취조하였다. 이보다
앞서 남곤(南袞)·심정(沈貞)이 공의에 버리는 바가 되어서 적노(積怒)
감정을 드러내어 몰래 역적이라고 모함해서 일을 헤아릴 수가 없었
다. 대신 정광필(鄭光弼)이 힘써 구함을 힘입어 나누어 귀양감에 차
등을 두어 귀양 보냈는데 공은 개령으로 장류되었다. 몇 달을 지내고
죄가 더하여져 남해로 쫓겨 갔다. 정암·충암은 사형의 명을 면치 못
하였다. 오호라! 가히 통곡할 뿐이로다. 선비는 진실로 충성을 다하고
도를 곧게 함이 있으니 나아가 밝은 임금에 착함을 좋아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이를 만나지 못하고 물러나 홀로 그 몸을 착하게 하고 액
곤으로 세상에 몰하는 것이다. 만일 공 같은 이는 충성이 족히 써 임
금의 알아줌을 맺을 만하되 성명한 세상에서 내쳐졌고, 밝음이 족히
써 그 몸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마침내 모리배의 함정을 만났으니
이 또한 어찌 하리오?
슬프도다! 하늘의 도를 기필할 수 없음이 한결같이 이에 이르렀도
다. 공이 절도(絶島)에 처한 지 13년에 비로소 임피로 옮기고 또 2년
에 향리에 방환되었다. 그 적소에 있음에 부모가 모두 먼저 죽어 이
198 예산군지(19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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