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928페이지

196페이지 본문시작

탈곡이힘들기도했지만,시간을다투어탈곡해야했기때문에모두탈곡기를이용하였다.

남,
원동기를분해하여지게로져날랐고,탈곡기도지게로져날라탈곡하였다.




독산마을주민들은두룡리21호국도까지나와길을닦았다.임부라고하였다.


1960년대까지 보령시의 모든 주민들은 국도변에 나와 도로를 닦았다. 이를 ‘임부’라고


하였는데 품삯도 없이 의무적으로 하는 일이었다. 봄과 가을에 동원되어 한 번은 돌을 깔

5
고,한번은돌을가에모아놓는일이었다.독산리마을주민들은배당구역이여늬재남쪽,
웅천읍두룡리구간이었다.이곳까지독산리에서단체로걸어와작업하였다.마을에서징
을울려모여출발하였다.
196
독산리서쪽에는말구멍과황새바위가있다.
독산리 서쪽, 독대섬 남쪽 해안에는 말구멍이라고 불리는 해식굴이 있다. 해식굴의 천
정부분에는 말 고삐를 묶어놓는 구멍도 뚫려 있다. 이곳에서 양씨가 태어나서 말을 타고
다니다가말이죽어말무덤까지만들었다는이야기가있다.말구멍남서쪽에는갯벌에노
출된황새바위가있는데,공수부대가훈련한다고훼손했다고한다.부근에는독살이3개
가있었으나현재는없다.
독대섬부근에서는자하(紫蝦)를많이잡았다.
독대섬북쪽,갯벌에서는초가을에자하를많이잡았다.갯벌에서도잡고,바위너덜에서
도잡는데,밀물썰물상관없이잡았다.옛날에는그물을밀고다녔으나요즈음은끌고다
닌다.잡은자하는모두젓으로담아팔거나먹었다.하루에30여㎏잡을때도있었다.자
하젓은15일쯤되면먹을수있다.
독산마을해안에서는후리그물을많이하였다.
독산마을청년들은봄부터가을까지후리그물을많이하였다.후리그물은그물의한쪽
을 끌고 바다를 반원형으로 둘러싸, 잡아 다니는 것이다. 숭어, 전어 등 다양한 고기를 잡
았다.팔정도는아니었고,주민들이먹으려고하였다.

196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