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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했으면100살정도되었으므로1920년대생정도이다.문둥병에걸려밖에잘나오지



않고 생활하였고, 마을 주민들도 그렇게 꺼려하지 않고 생활하였다. 꺼리지 않고 일도 해


주었다.환자도오래살았다.

1955년경,거치레에서물멕이하다가대여섯명의처녀가죽었다.
1955년경,독산큰동네여자들이거치레섬에해산물을채취하러들어갔다.썰물때들
어갔으나더많이잡기위해바로나오지않고,들물에배를타고나왔다.이렇게어로작업
을오랫동안하다가배를타고나오는것을‘물멕이’라고하였다.
이때 독대 섬에서 술을 마신 주민이 배를 가지고 거치레에 들어가 사람을 싣고 나오다,
키가 바위에 부딪쳐 전복되고 말았다. 이 사고로 대여섯 명의 처녀가 죽었다. 모두 큰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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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사람이었다.
당시사고를낸분이김한규씨인데죄책감으로남포면삼현리조잠마을로이사갔다가
한참후에독산으로돌아와살았다.
독산사람들은소황사람들과염전에서쥐불싸움을하였다.
정월열나흗날이되면독산리와소황리가염전에서쥐불싸움을하였다.독산리전체가
모이고소황리전체가모여싸웠는데,당시귀가먹은이완식이라는사람이공포의대상이
었다고전한다.쥐불싸움으로사고난경우는없었다고한다.
독산마을의새마을지도자는김형원,지용범이었다.
새마을운동 당시 독산마을의 새마을지도자는 김형원, 나중에는 지용범이었다. 이들의
지도로 마을길을 넓히고 개울에 축대를 쌓는 등, 새마을운동을 하였다. 새마을운동 당시
에는마을창고만있었고,후에노인정,다음에회관을지었다.
독산마을방앗간은2번옮겨다녔고,탈곡도하였다.
독산 마을에는 1948년생인 황광현 님이 태어나기 전부터 방앗간이 있었고, 2번을 옮겨
다녔다. 옛날에는 보리 탈곡도 방앗간에서 맡아서 하였다. 과거 보리 탈곡은 큰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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