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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경 다시 찾아 갔을 때는 사망하고 부인만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인은 남편
이 생전에 소리만 하고 가족을 돌보지 않은 것이 한이 되어 채록에 응하지 않았으며
부인이 서울(평택이라는 설도 있음)의 아들 집에 있다가 2003년 경 사망하였다.
김모씨의 각설이타령은 지금의 각설이타령보다 점잖은 특징이 있으며 동살풀이 가
락으로 노래를 부르지만 진양처럼 느리게도 부르고 아주 빠르게도 부르는 등 변화가
다양하였다. 청이 두껍고 힘이 좋아 어떤 부분은 판소리를 부르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였다. 그는 각설이들이 신세타령하듯 부르는 슬픈 각설이타령들을 많이 불렀는데
이는 공주의 사곡면 유재천 이라는 인물과 김모씨 두 사람만 부르는 노래였다. 지금
은 단절되어 필자 외에는 부르는 사람이 없는 소리가 되었다.
대를 이어 충청도 앉은굿(경)을 행한 박수. 광산 김씨의 집안에서 태어나 예
김세갑
산군 오가면 좌방리14-19번지에 살았으며 아들 용봉에게 박수를 물렸다. 무속인이면
서 노래를 잘하여 농요와 일반의 민요를 즐겨 불렀다. 좌방리 두레의 선소리꾼으로도
활동하였다. 지역 사람들이 소리 잘하는 무당으로 회자하고 있다.
오가면 좌방리에서 1939년생 출생하여 현재 활동하고 있는 소리꾼이다. 김용
김영상
봉의 아들로 아버지와 각종의 전통소리를 즐겨 부르는 마을의 영향을 받아 전통의 예
산소리 여러 수를 부른다. 특히 청춘가, 창부타령 등의 대중적인 유희요와 상여행상의
선소리를 잘한다. 보부상난전놀이 보존회에서는 계화자 소리의 선소리꾼이며 풍장놀이
상쇠이나 현대적인 가락을 배워 예산 전통장터풍장가락을 연주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
다.
아버지에게 경문을 배우다가 무당이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함에 포기하였으나
뿌리가 분명한 예산의 앉은굿 경문소리와 굿의 형태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그중 기
본이 되는 경문은 아직도 막힘없이 연행한다.
김영상이 본도서 무속의 노래 편에 채록한 회심곡은 상여소리에 사용되는 변형의
회심곡과 달리 무속인이 경문으로 사용한 회심곡의 전문으로 충청도 앉은굿의 경문을
2장 예산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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