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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상당히부정적이었다.‘진압군이왔다는소식에얼음녹듯이와해되
리라’(7월11일)와‘인심이조정의뜻으로겨우진정되었다’(7월16일)는
등의표현을보면,민란을대하는사대부오희문의입장과태도가대단히
비판적이었음을읽을수있는것이다.
당시민란을대하는부정적인입장은지배층의일반적인인식이었을
것으로생각된다.국가전체가외란을치르고있는어려운상황에서,동
기의순수성을떠나자신들의주장을민란을통해이루려는것은옳지않
다고보았을것이다.이제『쇄미록』과실록의기사를중심으로민란군의
전개과정을살펴보면그림1)과같다.
1596년(선조27)7월6일민란군은홍산현의동헌을공격하여현감윤
영현을 체포하였다. 곧바로 임천군으로 들어가 군수 박진국을 납치한
뒤, 관인을 탈취해 군사를 모았
다.두개군에서동조한사람만
수천명에이르렀다.임천군에서
는민가의말을탈취하여군마로
삼고, 관청의 쌀을 군량미로 충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민란 발
생초기인7월6일,홍주에살던
임득의 장군이 형제와 가솔, 홍
주지역민800여명을이끌고읍
성안으로들어갔다는사실은대
단히주목된다.
이에 홍주 목사 홍가신은 관
내에있던박명현에게임득의장
군에협력토록하였다.
이몽학의난진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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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청난공신임득의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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